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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움틈] '군대 없는 세상'은 가능하다

'군사적 방어'가 아닌 '사회적 방어'

흔히 '안보' 혹은 '방어'라는 개념은 군사적인 의미와 직결되어 사용된다. 따라서 군사력을 첨단화하고 안정적인 방어체제를 유지하는 것은 국가안보의 기본으로 그리고 위협에 대비하는 억지 수단으로 당연시 되고 있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이러한 군사적 방어 시스템은 다양한 차원에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군사적 방어는 사회를 위협한다

우선 군사력은 방어뿐만 아니라 공격에도 이용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나 최근의 북 미간 갈등 관계에서도 나타나듯이 오늘날의 군사 안보 개념은 적극적인 선제공격마저 정당화해 주고 있다. 군대와 군비 지출이 존재하는 한 군사력은 언제든지 이용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며 오히려 이러한 군사력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늘 적대세력을 만들어 내야 하는 모순적인 구조를 낳게 된다.

두 번째로, 직면한 위협에 대해 더 큰 위협으로 맞서는 것은 오히려 더 깊은 안보 딜레마를 초래하게 된다. 군사적 안보 수단은 그것이 방어하고자 하는 상대방을 오히려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기 때문에 당장의 위협을 피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계속되는 긴장 속에서 군비경쟁은 격화되고 위협의 정도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세 번째로, 군사적 방어체제가 공고화되고 이에 의존할수록 민주주의와 인권은 더욱 후퇴할 수밖에 없다. 테러, 대량살상무기 등에 대해 불안감을 조성하고 이를 통해 유지되는 안보 정치는 이것들로부터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여러 반인권적인 조치들을 정당화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갈수록 '자본집약화'되고 있는 군사적 방어체제는 사회 내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는 주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밖에도 군사기지나 대량살상무기로 인한 환경 문제, 지역 주민들의 생존권 문제 등은 군사적 방어 체제가 유지되고 정당화되는 한 줄곧 제기될 수밖에 없는 문제들이다.


사회 공동의 비폭력 저항, 사회적 방어

이러한 군사적 방어 체제의 문제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많은 평화 활동가들과 연구자들에 의해 제기되어 왔으며 냉전체제가 시작되었던 1950년대 이래로 군사적 방어를 대신할 수 있는 여러 비폭력적인 수단들이 제안되어 왔다. 이러한 대안들 중 하나가 바로 사회적 방어(Social Defence)이다. 이 분야의 대표적인 연구자 중 한 사람인 오스트레일리아 울런공 대학의 브라이언 마틴(Brian Martin)에 따르면, 사회적 방어는 군사적 방어에 대한 비폭력적 대안 개념으로 군사적 침략 또는 정치적 억압에 대항하기 위한 사회 공동의 비폭력 저항을 일컫는다. 이를 위해 보이콧, 불복종, 파업, 시위, 대안 공동체 건설 등 광범위한 저항과 설득, 비협조, 개입 방식을 동원한다. 또한 사회적 방어는 군사적 침략에 대한 방어뿐만 아니라 정부의 억압에 대한 지역사회의 방어, 여성에 대한 남성 폭력으로부터의 방어까지도 포함하는 개념이다. 즉 사회적 방어는 인권, 민주주의 등과 같은 사회의 불가침적 요소들을 모든 억압과 폭력으로부터 비폭력적으로 방어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흔히 비폭력이라 하면 수동적인 저항을 떠올릴 수도 있지만 사회적 방어의 핵심은 비폭력 '직접행동'에 있다. 사회적 방어는 민주주의이든 독재 체제이든 간에 대다수 시민들의 수동적이고 암묵적인 동의 없이 존재할 수 있는 체제는 없다는 원칙에 기초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모든 체제는 동의와 협조 그리고 복종 위에 세워진다는 것이다. 사회적 방어는 이러한 동의, 협조, 복종을 조직적으로 붕괴시키고 이를 비협조와 불복종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계획된 것이다. 이러한 투쟁 형태의 잠재력은 이미 몇몇 역사적 사례에서 입증되고 있다. 1923년 프랑스와 벨기에군의 점령에 맞선 루르 지역민들의 불복종 투쟁, 1961년 알제리 군사 반란의 붕괴, 1968년 소련 침공에 대한 체코슬로바키아 민중들의 저항 등의 사례들이 그것이다. 물론 이러한 사례들은 사회적 방어를 의식적으로 추구한 것이라기보다는 대부분 비폭력 행동이 자생적으로 나타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사회적 방어는 이러한 역사적 사례를 통해 나타난 비폭력 행동의 동학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군대와 무력수단을 대체할 수 있는 사회 전반의 시스템 전환을 의미한다.

물론 사회적 방어는 대적 관념이 유지된다는 점에서 군사적 방어와 공통적 성격을 갖는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또한 엄혹한 현실 논리를 고려하지 않은 지나친 이상주의로 치부되기도 한다. 그러나 사회적 방어는 단순히 억압과 침략으로부터 사회를 지켜낸다는 것에만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비폭력을 지향하고 거대자본이나 중앙 집중적인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는 자기 의존적인 사회로 변화시켜 나가고자 하는 데에 더 큰 의미가 있다. 현재의 산업생산, 에너지, 식량, 운송, 커뮤니케이션 시스템 등은 상당 부분 군사안보 체제에 부합된 것인데, 이는 중앙 집중화된 통제에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적 방어는 이러한 중앙 집중적인 시스템보다는 분권적이고 식량 물 에너지 및 여러 필수 자원들을 자급하는 공동체의 역량을 강조한다.

사회적 방어는 어느 한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스스로 방어하고자 할 만한 가치가 있을 때 공동체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비폭력 행동 조직으로 가능하다. 따라서 사회적 방어는 거창한 체제전환을 요구하거나 완성된 상태를 상정하고 있기보다는 오히려 우리사회가 지켜내야 할 가치가 위협받을 때 이에 비폭력적으로 저항하려는 지역 내, 그룹 내 풀뿌리 행동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소규모의 사회적 방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군사력에 의존하는 안보 체제가 얼마나 불안하고 '실질적인' 안보와 거리가 먼 것인지는 이미 50여 년의 세월이 증명하고 있다. 일상의 폭력에 비폭력적으로 저항하고 그러한 과정을 공동체 내 역량으로 쌓아갈 때 현재의 군사적 안보체제에 대한 평화적 대안이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군대 없는 세상이 가능하다는 것은 더 이상 상상이 아닌 현실의 문제가 되어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덧붙임

정용욱 님은 현재 평화인권연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