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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개인정보 유출은 '사고'가 아니다

◐ 지음의 인권이야기 ◑

"휴대폰 가입자 정보 대량 유출", "개인정보 침해, 매년 급증!", "스팸메일 이유 있었다 개인정보 인터넷 매매", "637만 개인정보 팔려나갔다" 최근 신문지상을 가득 채웠던 개인정보 유출 사고 관련 기사 제목들이다. 그러나 국민의 절반이 넘는 사람들의 개인정보가 돌아다니고 있는 상황이 '사고'라는 말로 설명될 수 있을까?

다음과 같은 상황을 가정해 보자. 자동차 수는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렀음에도 여전히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자동차로 인한 각종 공해와 사고의 위험에도 자동차를 구입하는 데 별도의 규제나 세금은 부여되지 않는다. 관련 법규들은 경제 발전과 교통 효율이라는 명분 아래 일방적으로 운전자들의 편의와 자동차 산업의 육성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편 보행자의 권리와 안전을 위한 법률적인 보호장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자동차의 통행을 제어하거나 과속을 단속할 수 있는 인력 또는 경찰도 턱없이 부족하다. 보행자의 절반에 이르는 사람들이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지만 운전자들의 주의력과 선량함만을 믿고 있다. 만약 사태가 이러하다면 보행자가 자동차에 치어 다치고 죽는 것을 단지 '사고'라고 말할 수 있을까?

개인정보를 담은 데이터베이스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어디서 어떠한 데이터베이스가 만들어지고 있고 또 어떤 사람들에 의해 어떻게 거래되고 있는지 알려진 바가 전혀 없다. 하지만 문자메시지와 이메일 스팸 공해는 이미 도를 지나쳤다. 또한 부유층의 개인정보를 확보해 범죄에 활용된 사례들은 심각한 사고의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공해와 사고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개인정보 데이터베이스에 대한 별도의 규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편 정보주체들은 여기저기서 필요 이상의 정보를 제공하도록 강요받고 있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저 정보수집자의 양심과 국가와 기업의 신뢰성에 기댈 뿐이다. 그러나 국가는 개인정보의 가장 기본인 주민등록제도부터 정보인권을 원천적으로 부정하고 있으며, 가장 대표적인 기업인 이동통신사는 개인정보을 유출하는 주요 소스가 된 지 오래다. 보안기술이 대안이 될 수 있지 않냐고? 어떤 첨단 시스템이든지 결국은 사람의 판단이 개입된다. 교통사고가 자동차 기술의 발전과 무관하듯이 정보인권침해와 보안기술은 별개의 문제이다.

정보통신부가 사적영역의 개인정보보호를 맡겠다고 한다. 그러나 정통부는 그 동안 정보통신기업들의 편의와 정보산업의 육성을 위해 이러한 문제들을 외면해 오지 않았던가. 행정자치부는 공공기관의 개인정보보호를 맡겠다고 한다. 그러나 행자부는 스스로가 하나의 공공기관이 아니었던가. 고작 이미 터져버린 사고에 대한 신고를 접수받고,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는 '경고장'을 날리는 정도의 허약한 기관, 소수의 인력만으로 정보인권이 수호될 수 있겠는가?

개인정보 유출 사고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다. 그것은 구조에 내재한 '위험'이며 고의로 방치되고 조장되고 있는 '범죄'다. 몇 가지 단편적이고 형식적인 규제만으로는 해결될 만한 것이 아니다. 국가와 기업으로부터 독립된 강력한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절실하다.

◎ 지음 님은 진보네트워크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