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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경찰, '정보인권' 나 몰라라

최근 경찰이 수사편의를 빌미로 범죄 용의자의 주민등록번호를 유출시켜 개인정보에 대한 경찰의 미비한 인권의식이 다시금 드러났다.

경찰은 지난 3일 살해용의자 A씨를 검거하기 위해 A씨의 주민등록번호를 수록한 3만 여장의 수배전단을 배포했다. 같은 날 오후 A씨의 주민등록번호가 모 인터넷포털사이트에 가입을 위해 등록되자, 단서를 잡았다고 생각한 경찰은 병력 200여 명을 투입해 서울의 한 아파트를 포위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한 초등학생이 전단지에 나온 A씨의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해 인터넷 사이트에 가입하면서 일어나게 된 것으로 밝혀졌다.

범죄 용의자의 주민등록번호를 수배전단에 실음으로써 용의자 검거가 가능하다는 발상은 주민등록번호가 중요한 개인정보이며, 집적된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하여 정부가 개개인의 프라이버시를 관리, 통제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다산인권센터 박김형준 활동가는 "주민등록번호가 생년월일은 물론, 본인도 잘 알지 못하는 주민등록번호를 부여받은 지역까지 표기하도록 강제하고 있어 자기정보통제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 사건은 인터넷 사이트 가입 시 의례적으로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해야 하는 관행에 경종을 울리기도 한다. 박김형준 활동가는 "국내 사이트들의 대부분이 주민등록번호 하나만 알면 가입이 가능하다"며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한 사이버 범죄가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민등록번호의 수정이 영구적으로 불가능한 현실에서 번호가 한번 유출되면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통해 양산될 수 있는 파급력은 상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민등록법 제21조 9항은 '다른 사람의 주민등록번호를 자기 또는 다른 사람의 재물이나 재산상의 이익을 위해 사용한 자'에 한해 처벌을 규정하고 있어, 주민등록번호가 유출될 경우, 개개인에게 돌아갈 손실을 재산상 피해로 국한시키고 있다.

10일 다산인권센터, 진보네트워크 등 11개 인권단체들은 성명서를 통해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한 범죄로 인해 개인정보침해가 심각한 상황에서 이를 근절해야 할 경찰이 오히려 개인정보를 악용한 범죄를 조장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