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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 범용의 인권이야기 ◑ 내가 만약 국가인권위원장이라면…

"내가 만약 국가인권위원장이라면…" 물론 이러한 가정은 성립할 수 없을지 모른다. 검찰 출신으로 인권변호사로 일했었고, 참여연대 공동대표, 대한변협 회장 등을 역임한 후, 한 나라의 인권보장을 위한 최고의 국가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의 장을 맡은 지 벌써 4년째인 인물 김창국. 그의 경륜과 시야를 이제 인권현장에서 활동을 한 지 갓 4년째인 풋내기 젊은 활동가가 어찌 꿈이라도 꿀 수 있으랴! 하지만 나는 감히 그에게 인권의 이름으로 좀더 겸허하게 자기 반성을 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싶다.

김창국 위원장은 지난달 1일 '최저생계비로 한달나기, 희망UP' 캠페인에 릴레이 체험의 첫 번째 주자로 참여했다. 이 캠페인은 최저생계비로 실제 한 달을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체험하고, 이를 올해 정부의 최저생계비 실제 계측 과정에 반영해 최저생계비를 현실화시킨다는 취지로, 참여연대와 아름다운재단이 공동 기획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그날 하루 체험 후 빈곤 문제를 '복지'가 아닌 ‘인권'의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고 자신의 소감을 피력했다. 시혜 차원이 아니라, 국민의 가장 기초적인 기본권이라 할 수 있는 생명권을 보장한다는 관점에서 접근해야만 빈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결코 새삼스럽지 않은 김 위원장의 소감에 나는 버럭 화가 치밀어 오른다. 지금까지 인권위가 빈곤 문제에 대해 별다른 활동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빈곤 문제를 인권의 관점에서 국가 차원으로 해결해야 할 책무가 있는 국가기관이 바로 인권위였음에도 불구하고! 따라서 김 위원장은 빈곤 문제도 인권 문제라고 주장하거나 훈계하기에 앞서, 인권위의 장으로서 지금까지 인권위가 빈곤 문제를 소홀히 다뤄 왔던 사실을 먼저 반성해야 했다.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의 침해와 빈곤 문제는 떼려야 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권위가 사회권의 침해에 맞서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비판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사회적 차별의 대명사인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 지난해 초 의욕적으로 시작했던 테스크포스팀의 활동은 1년 반이 지난 현재 흐지부지된 상태다. 사회권의 총체적 후퇴를 몰고 올 경제자유구역에 대해서도 지난해 누차 정책 권고를 요청했지만, 인권위는 조사 계획조차 없다고 한다. 빈곤 관련 실태조사가 최근 마무리됐고, 최저생계비에 대한 정책 권고를 준비 중이라고 하는데,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자기 반성이 결여된 채 당연한 주장만을 되풀이하는 것은 직무유기일 수 있다. "내가 만약 국가인권위원장이라면…" 지금까지 인권위가 사회권 침해의 문제를 계속 후순위로 미뤄왔던 원인을 진단하고 내적 쇄신부터 단행함으로써, 빈곤 체험에 대한 소감을 대신했을 것이다. '빈곤 문제를 인권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고전적인 주장은 인권위, 더 나아가 김 위원장 스스로에게 더욱 절실한 명제가 아닌가 싶다.

◎범용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