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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국민들의 정치적 결단이 필요할 때!

헌법재판소, 이라크파병 헌법소원 각하 결정

미군을 포함해 전세계적으로 세 번째 규모에 달하는 병력을 이라크에 파병하기로 한 정부와 국회의 결정에 대한 위헌소송에서 헌법재판소(아래 헌재)가 각하결정을 내려 비판이 일고 있다.

시민 이 모씨는 이라크 파병이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고 명시한 헌법 제5조에 위반된다는 이유로 지난해 11월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이에 지난 29일 헌재 전원재판부(주심 이상경 재판관)는 "대통령의 파병 결정은 그 성격상 국방 및 외교에 관련된 고도의 정치적 결단을 요하는 문제이기에 헌재의 사법적 심판은 자제되어야 한다"며 이라크 파병 위헌소송에 대해 각하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헌재가 각하 결정이유로 제시한 '고도의 정치적 결단'이 '지나치게 애매한 개념'이라며 "책임 회피"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헌재의 입장이 근거하고 있는 '통치행위 사법처리 불가론'에 따르면, 사법기관이 사법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범위는 '고도의 정치적 결단'의 범위에 따라 큰 폭으로 달라지게 된다. 이에 따라 '파병 결정이 헌법에 위반되는지의 여부와 이라크전쟁이 침략전쟁인지의 여부 등에 대한 판단이 대통령과 국회의 몫'이고, '재판소의 판단이 대통령과 국회의 그것보다 더 옳다거나 정확하다고 단정짓기 어려움'을 헌재가 자인한 꼴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헌재는 "한정된 자료만을 가지고 있는 재판소가 판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이정희 변호사는 "사법소극주의"라고 일축했다. 이 씨는 "통치행위론에 의하면 법원이 판단할 수 있는 여지가 너무 줄어든다"며 "헌재가 자기 역할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 답답하다"고 말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대 교수는 "헌법학자들은 일반적으로 통치행위론을 구시대적인 이론이라며 그다지 인정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에 헌재는 "사법적 심사의 회피로 자의적 결정이 방치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을 수 있으나 그러한 대통령과 국회의 판단은 궁극적으로는 선거를 통해 국민에 의한 평가와 심판을 받게될 것"이라고 했다. 현실에서는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70%의 국민이 국회를 심판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전투병 파병에 반대하는 60%에 이르는 국민의 의사는 어디에서도 반영되지 않고 있다.

여기서 국민의 의사에 따라 국민 스스로 입법할 수 있는 국민발의제와 국민의 의사를 따르지 않는 대표자를 소환할 수 있는 국민소환제가 주목을 끌고 있다. 그러나 17대 국회에서 국민소환제 도입을 약속한 열린우리당은 "이라크 파병과 같은 정치적 결정에 대해서는 헌법소원 등 다른 방법으로 그 정당성을 묻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제 파병의 정당성은 그야말로 '누구에게도 물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이러한 헌재의 결정과 열린우리당의 행보를 통해 '고도의 정치적 결단'은 '누군가에게 물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이 드러났다. 국민발의제·국민소환제 실시와 같이 더 많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국민들은 스스로 그 답을 찾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