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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정상가족'은 없다

건강가족기본법 토론회 열려 … 다양한 가족형태 인정해야

최근 출산율 하락, 이혼 및 독신가구 증가 등 가족을 둘러싼 사회·인구학적인 변화는 '가족' 에 대한 논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24일 여성민우회 가족과 성상담소는 '건강가족기본법'을 진단하는 토론회를 개최하였다. 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은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건강가족기본법이 소수자를 차별하고 다양한 가족형태를 인정하지 않는 문제점이 있다고 비판했다.

발제를 맡은 이재경(이화여대 여성학) 교수는 "한부모 가족, 재혼가족, 맞벌이 가구, 자녀를 두지 않는 부부가족, 기러기 아빠로 칭하는 별거가족, 동거가족, 동성애 가구, 독신 가구 등 가족구성과 형태가 다양해지고 있는 현실에서 가족의 범위나 경계, 내용과 성격을 규정하는 '하나의 가족 개념'은 존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건강가족기본법 3조에서는 가족을 '혼인, 혈연, 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단위'로 규정하고, 가정에 대해서도 '가족구성원이 생계 또는 주거를 함께 하는 생활공동체로써 구성원의 일상적인 부양, 양육, 교육 등이 이루어지는 생활단위'로 정의하고 있어 변화하는 현실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또한 '가족해체' 라는 말을 법조문에 명시함으로써 특정한 가족 유형에서 벗어난 가족들은 불완전하고 기능적인 결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어 '정상가족' 이외의 가족들을 낙인찍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이 교수는 " '건강가정'이라는 용어는 이미 그 표현 속에 '건강하지 못한 가정'에 대한 가치판단을 만들어 결과적으로 하나의 특정한 가족형태를 특권화 시킨다"고 밝혔다.

또한 건강가족기본법 8조1항은 '모든 국민은 혼인과 출산의 사회적 중요성을 인식하여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이것은 이성애적 결합, 동거가 아닌 결혼, 자녀 출산을 더 이상 개인적 선택이 아닌 '국민의 의무'로 보는 것으로 동성애가구, 독신가구 등을 배제하고 차별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한국여성개발원 조은희 연구위원은 "혼인제도 외에도 사람들이 함께 사는 삶의 형태는 다양한데 혼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 연구위원은 "혼인과 출산이 중요한 것일 수는 있지만 이러한 조항은 자칫 혼인하지 않거나 출산하지 않은 소수자들에 대한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고 혼인과 출산이라는 가치기준을 모든 국민에게 규범화시키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자유권에 대한 침해"라고 말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이박혜경 씨는 '정상가정'을 염두에 둔 채 복지체계를 짜는 것 역시도 핵가족에 대한 특권이라고 비판했다. 건강가족기본법 23조에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사회보험, 공공부조 등 사회보장제도의 운용과 관련하여 보험료 산정·부과, 급여 등을 운영함에 있어서 가족을 지지하는 시책을 개발·추진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성민우회는 토론회에서 논의된 내용을 정리하여 보건복지부에 의견서를 전달할 계획이다. 혈연을 중심으로 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지배적인 우리 사회에서 이번 토론회는 가족중심주의를 넘어서 가족에 대한 다양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