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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 기고 > 사회보호법 폐지,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편집자주] 여야정당이 사회보호법 폐지를 당론으로 밝혔던 것과는 달리 16대 국회는 사회보호법을 그대로 남겨두었다. 사회보호법 폐지운동을 전개해온 청송감호소 출소자로부터 그간의 심경을 들어본다.

2004년 2월 26일. 사회보호법이 폐지되는 역사적인 날이 되기를 바라는 많은 사람의 염원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국회 법사위원회는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비겁한 논리를 내세워 사회보호법폐지법률안을 '법안1소위'에 회부했다. 이로써 16대 국회에서 사회보호법폐지법률안의 통과는 사실상 무산됐다.

지난 2003년 8월 22일 청송제2보호감호소를 가출소한 후 나는 사회보호법 폐지를 위해 일할 것을 굳게 다짐했다. 그 동안 사회보호법폐지운동에 나름대로 노력했던 나는 사실상 사회보호법폐지법률안의 국회통과가 무산된 그날, 국회 정문을 나설 때까지 참았던 눈물과 분노로 밤을 하얗게 샜다. 통곡으로 밤을 지샌 사람이 어찌 나 한사람뿐이겠는가 만은 내게는 유독 큰 아픔이었다.

사회보호법이 생긴 이래 24년간 보호감호의 반인권적·위헌적 요소에 대한 지적이 끊이지 않았지만 사회적 절대약자인 피감호자들은 항상 외면 당해왔다. 그러다가 2002년 4월부터 계속된 피감호자들의 여섯 차례 단식투쟁과 인권시민사회종교단체를 망라한 여러 단체의 피눈물 나는 노력에 힘입어 이번에야말로 사회보호법 폐지에 대한 전국민의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하지만 16대 국회는 사실상 마지막 임시회라고 할 수 있는 제245회 임시회 회기 며칠 전까지만 해도 사회보호법폐지법률안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러다가 여론의 질타를 의식한 나머지 회기 이틀을 앞둔 2월 26일 부랴부랴 법사위원회 전체회의에 폐지법률안을 안건으로 상정했다.


국회가 보여준 사기극

사회보호법폐지법률안이 상정되자 전직 특수부 검사 출신 함승희 의원이 강금실 법무부 장관에게 '폐지하면 피감호자들이 한꺼번에 사회로 쏟아져 나올 것인데 대책이 있는가'라고 물었다. 김용균 의원은 출처도 분명치 않은 살인사건을 들먹이며 '흉악범에 대한 대책이 있는가'라고 거들었다. 강금실 법무부 장관은 '대안을 3월중에 마련하겠다'고 장단을 맞추었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김기춘 법사위원장은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추임새를 넣으며 법안1소위로 회부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이것은 야바위다. 파렴치한 사기극이다.

언론에 보도된 사회보호법에 대한 국회의 입장은 오로지 '폐지' 하나였다. 한나라당은 이주영 인권위원장이 직접 청송감호소를 방문하여 실태를 조사한 후, 당론으로 사회보호법폐지를 결정하고 이주영 의원 대표 발의로 사회보호법폐지법률안을 발의했다. 열린우리당 역시 청송감호소를 직접 방문하여 실태를 조사한 다음 당론으로 폐지를 결정하고, 소속의원 전원이 서명하여 사회보호법폐지법률안을 발의했다. 민주당도 뒤질 수 없다는 듯이 나팔수를 내세워 사회보호법 폐지를 적극 찬성한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법무부의 대책은 책상머리에서만

더욱 기가 찬 것은 3월중에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법무부의 태도다. 어찌하여 이제야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것인가. 물론 지금까지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논의를 거듭했을 것이다. 그러나 책상머리에 앉아 논의를 하는 동안에도 피감호자들은 단식으로 절규하고 있었다. 가족들은 남이 볼까 숨어서 피눈물을 삼켰다. 근래 들어 피감호자들은 여섯 차례나 단식을 반복하며, 수 천 통의 진정서와 편지로 사회보호법의 폐지를 호소하기 시작한 세월이 만 2년이 넘었다. 그런데도 아직 대안을 마련하지 못했단 말인가.

보호감호 폐지에 대한 여론이 비등하던 지난 2003년 9월 이후 3개월 동안 법무부는 약 700명 가까운 피감호자들을 가출소시켰다. 그래도 사회는 전혀 혼란스럽지 않았다. 가출소자들은 차떼기로 기업을 털어먹지도 않았고, 국민을 구경꾼 삼아 주먹질을 일삼지도 않았다.

'심도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본질을 호도하지 말고 차라리 피감호자들을 무시하고 내버려두면 되는 버러지 같은 존재라고 말하라. 법무부 보호국의 요직을 두루 꿰차고 들어앉아 있는 검찰의 밥그릇을 지켜주기 위해 보호감호를 폐지할 수 없다고 당당히 말하라. 그것은 비겁하게 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지난 11일 공대위 활동가님들과 청송보호감호소를 찾았다. 피감호자들은 이제 분노할 힘조차 잃어버린 듯했다. 이를 갈면서 분노하기보다는 이제야말로 저 야바위꾼들의 말장난이나 언론의 나팔에 흥분하지 말고, 이성적인 싸움을 준비할 때라고 했다. 사회보호법 폐지를 위해 목숨을 던진다는 각오를 새롭게 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 사회보호법폐지법률안의 국회통과가 무산된 것은 나에게나 피감호자들에게나 또 다른 시작을 알리는 신호에 불과하다. 17대 국회가 구성될 때까지 전열을 재정비하자는 내 스스로의 다짐까지도 나는 경계하고자 한다. 다음이 아니라 지금부터라고.

[조석영씨는 사회보호법폐지를 열망하는 청송감호소 가출소자 모임 대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