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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연재] 국가인권위원회 들여다보기 : 인권위 국내협력,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국가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일은 민간단체의 주된 역할이다. 따라서 국가기관이 자신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민간단체와 협력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의 경우는 정반대다. 인권단체 및 전문가들과의 협력은 인권위의 의무이자 권한인 것이다. 국가권력의 인권침해에 맞서 결연히 싸워야 할 책무를 지고 탄생한 국가기구가 바로 인권위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인권위법은 "인권의 옹호와 신장을 위하여 활동하는 단체 및 개인과의 협력"(제19조 8호)을 인권위의 업무 중 하나로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법으로까지 명시된 이 이례적인 업무를 위해 인권위는 국내협력과를 두고 있다. 국내협력과 김대철 과장은 올해 사업목표를 "인권단체들과의 공동 파트너쉽 구축"이라고 말한다. 이를 위해 현재 △인권단체 실무자와의 정례모임 △단체 활동가 인권교육 프로그램 운영 △인권시민단체 간담회 개최 △민간단체 프로젝트 지원 등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인권위와 인권단체들의 공동 파트너쉽이 구축되려면 국내협력과 업무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국내협력, 기획·조정하라

인권위는 인권침해가 발생하는 곳에서 △침해의 대상을 확인하고 △옹호의 내용을 확정하며 △활동의 방식을 고민하게 된다. 따라서 인권위 안의 단순 행정지원 부서를 제외한 모든 부서는 사실상 국내협력을 자신의 활동방식 중 하나로 적극 취해야 한다.

이는 국내협력이 단지 국내협력과만의 업무가 아니라는 뜻이다. 대외적으로 국내협력과는 인권위와 인권단체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지만, 대내적으로는 국내협력에 관한 '기획조정실'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국내협력과가 인권위 각 부서의 국내협력 업무를 적극적으로 기획조정하려는 모습을 현재로서는 찾아볼 수 없다.

인권위가 진정 국내협력을 강화하려면 각 부서별로 국내협력 담당자를 두고, 국내협력과가 중심이 되어 부서별 국내협력 담당자가 결합하는 방식으로 기획조정 회의를 운영해야 한다. '국내협력 기획조정 회의'는 부서별 국내협력 업무를 조정하고 인권단체들과의 협력틀을 짜야 한다. 뿐만 아니라 국내협력의 틀 내에서 해결해야 할 인권현안을 적극 발굴해야 한다. 활동방식으로서의 국내협력은 인권현안이 적극적으로 제기됐을 때 활발해지기 때문이다.


인권단체와의 정례모임, 가능하려면?

국내협력과가 올해 가장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사업은 '인권단체 실무자 커뮤니티'다. 국내협력과 김성희 씨는 "이름이야 어떻든 인권단체들과 정기적인 의견교류 통로를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현재 국내협력과는 5월 중 첫 모임을 갖고 이후 짝수 달마다 모임을 정례화할 계획이다. 이 정례모임을 통해 인권위는 자신의 사업을 브리핑하고, 인권단체들은 자신의 요구사항을 의제로 올린다. 필요할 경우 해당 상임위원이나 담당 국장도 배석한다.

커뮤니티는 인권단체들이 그동안 '정례적인 정책간담회'라는 이름으로 인권위에 줄기차게 요구해 온 사항이기도 하다. 하지만 커뮤니티의 성사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인권위 출범과정에서 일부 인권단체들이 배제된 문제와 그 동안 인권위가 보여왔던 폐쇄성·관료성 등에 대해 인권위가 명시적으로 해명하지 않는 한, 인권단체들이 커뮤니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길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부터 인권운동사랑방은 현 인권위에 대해 일체의 협력을 거부하고 있다. 공개적인 선언의 형태는 아니지만, 다산인권센터 등도 내부적으로 협력거부의 입장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모든 인권단체들이 협력을 거부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인권위 출범과정의 문제점과 폐쇄성·관료성 등의 지적에는 대체로 공감하고 있다.

이와 관련 최영애 사무총장은 지난 2월말 과거 「국가인권위 바로 세우자! 인권단체 연대회의」 관계자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위원장이 인권단체와 간담회를 가지면서 과거 문제에 대해 내용적으로 유감표시를 하겠다"는 의사를 표한 바 있지만, 아직까지 인권단체와의 관계를 풀고자 하는 인권위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인권단체와의 관계가 개선된 후라야 커뮤니티는 비로소 활성화될 수 있다. 협력거부 입장을 견지하며 인권위 출범과정과 현재 운영의 문제점을 지적해 온 인권단체들의 문제의식을 국내협력과는 다시 한번 심사숙고해야 한다.


인권단체를 교육한다고?

'앞으로 인권단체들의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전제 아래 국내협력과에서 밝힌 내용에 따르면, 인권위는 수도권, 충청권, 호남권, 영남권 이상 4곳에서 단체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인권교육을 진행할 계획이다. 교육 내용은 △인권위에 대한 이해 △유엔의 활용방식과 국제연대 △인권운동의 역사와 전망 △인권상담을 위한 법률지식 등이다.

이에 대해 전북평화와인권연대 전준형 집행위원장은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한다면 간담회 정도면 되지, 국가인권위가 교육한다고 하면 누가 들으러 가나요?"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현장에서 활동하는 인권단체의 목소리를 듣고 배우려는 자세를 가져야 할 인권위가 오히려 인권단체를 교육하겠다고 나서는 발상 자체가 부적절하게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2001년 3월 의문사위 주최로 열린 '남아공 진실과화해위원회 파즐 란데라 위원 초청강연'은 인권위가 눈여겨볼 만한 행사다. 외국의 인권위원과 활동가를 짝으로 초청해 그 나라의 인권위 활동에 대해 강연을 듣는 것은 어떨까? 섭외와 재정의 문제로 인권단체들이 엄두를 내지 못하는 행사에 대해서는 인권위가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

국내협력에 대한 전략적 사고 속에 기획된 것이 아니기에, 올해 국내협력과의 사업은 후한 점수를 받을 수 없다. 지금 국내협력과에 필요한 것은 발상의 전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