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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기획 연재> 소리없는 '사형선고', 사회보호법 ③

국가가 만들어 내는 '되돌이표' 인생들


"징역 5년에 보호감호 5년. 정말 이번만큼은 사회에 나가서 한눈 팔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열심히 일했습니다. 하지만 올 초 청송보호감호소를 나올 때 제 손에 쥐어져있던 돈은 고작 44만원이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솔직히 말하면 저는 지금도 범죄의 유혹을 느낍니다." 한푼이라도 더 모을 생각에 다친 팔의 치료도 출소 뒤로 미뤘다는 김모 씨는 상태가 악화돼 깁스까지 해야 했던 왼쪽 팔을 보여주며 울분을 토해냈다.


사회능력 제거하는 교육·직업훈련

사회보호법은 "죄를 범한 자로서 재범의 위험성이 있고 특수한 교육·개선 및 치료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자에 대하여 보호처분을 함으로써 사회복귀를 촉진하고 사회를 보호"(법 1조)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러한 목적 달성을 위해 피감호자들은 보호감호소에 수감되며, 원활한 사회복귀를 위한다는 이유로 기술교육 및 직업훈련을 부과받는다. 하지만 피감호자들은 보호감호소에서 이뤄지는 교육과 훈련이 '사회복귀' 프로그램이 아닌 '사회능력 제거' 프로그램이라고 맹렬히 비난한다. 사회정착을 위한 밑천 마련은커녕 기술습득도 되지 않는, 오직 노동력 착취와 시간 때우기를 위한 프로그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2003년 4월 현재 청송보호감호소에서 진행되는 작업은 △위생비닐장갑 포장 및 개수 세기 △소쿠리 만들기 △열쇠고리 만들기 등 총 3가지. 일반교도소에 있는 작업의 수가 평균 10여개를 상회하는 것에 비한다면 정말 초라한 '프로그램'이다. 게다가 하나같이 단순작업에 불과해 숙련된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일반교도소에서 실시하고 있는 외부통근제도(외부 공장에 출역하는 제도) 역시 청송보호감호소엔 존재하지 않는다. 청송보호감호소가 극단적인 오지에 위치해 있다보니 인근에 작업을 하러 나갈 공장도, 작업을 위탁해오는 사업주도 없는 것이다. 때문에 피감호자들은 보호감호소 내의 허름한 공간에 둘러앉아 '무의미한 시간 때우기'를 반복하고 있다.

직업훈련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정보화교육을 비롯해 타일, 건축도장, 보일러, 미용 등 자격증 취득을 목표로 10개의 직업훈련이 실시돼 합격률 100%를 자랑하지만 이 역시 사회에 나오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교도소표' 자격증에 불과하다.

타일 자격증을 취득했다는 한 출소자는 "평소 하는 훈련이라곤 벽에 타일을 붙였다 뗐다 하는 것이 전부"라며 "시험 보기 이틀 전부터 교도관이 가져다 준 도면을 달달달 외우고 가면 대부분 시험에 합격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그렇게 딴 자격증을 갖고 출소후 막노동판에라도 가면 '교도소표'라며 욕만 잔뜩 먹고 쫓겨난다"며 "그런데도 직업훈련을 받는 건 자격증을 취득해야만 조금이라도 일찍 가출소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작업은 보상없는 강제노역에 불과

작업에 대한 '적정한 임금'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하루 8시간씩 일하는 피감호자들에겐 1천4백원에서 많게는 5천8백원의 일당이 '근로보상금'이라는 명목으로 주어지는데, 대개는 2천원 가량을 받는다. 1일 최저임금이 1만8천2백원이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터무니없는 액수지만, 이마저도 지난해 피감호자들이 세 차례의 단식농성을 통해 인상시킨 액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대부분의 피감호자가 한달 내내 버는 돈은 채 5만원도 넘지 못한다. 때문에 지난 3월엔 근로보상금 문제에 대한 헌법소원이 제기되기도 했다. 헌법소원을 낸 <사회보호법폐지를위한공동대책위원회>는 "현재의 근로보상금제도는 결과적으로 범죄를 국가가 양산하는 체제의 뿌리이고 무보상의 강제노역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보호감호소 생활을 하다 보면, 저축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감호소에서 지급되는 생필품의 양이 턱없이 부족한데다, 질도 매우 떨어지다 보니 의약품은 물론이고 내의류와 일용잡화의 구입 역시 피감호자들의 몫이다. 휴지, 운동화, 신문에 이르기까지 각종 지출로 빠져나가는 돈을 제하다 보면, 결국 출소할 때 주머니에 든 돈은 채 1백만원도 못 된다. '재기'의 가능성도, '정착'의 밑천도 없는 출소자들은 또 다시 '한탕'을 꿈꾸다 어느 순간 보호감호소로 되돌아오곤 하는 것이다.


학사반 운영은 빈껍데기

그렇다면 교육은 어떨까? 기술도 못 배우고 돈도 못 모으는 형편에서 피감호자들의 '희망'은 '학력취득'으로 쏠린다. 명목상으로나마 청송보호감호소에는 학사반이 마련돼 있다. 대부분의 피감호자들의 학력이 매우 낮다는 지적에 따라 지난 90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이름만 학사반일 뿐 교육과정이 따로 마련돼있지는 않다. 작업에서 면제시켜주고(근로보상금은 주어짐), 검정·학사고시 등에 합격할 경우 가출소 심사에 반영되는 것을 제외하면 아무런 지원이나 혜택이 없다. 비치된 책이라곤 90년판 학사공부책 한 질만이 덩그러니 '기증'이란 마크가 찍힌 채 방안 한 구석에 박혀있을 뿐이다.

청송보호감호소 역사상 처음으로 감호소 내에서 학사자격증을 취득했다는 김모 씨는 "1년 8개월 공부하는 동안 감호소측으로부터 단 한 권의 책도 지원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3년 내내 학사반에서 공부했다는 이모 씨 역시 "학사반은 감호소를 선전하기 위한 전리품에 불과할 뿐 실상은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또한 학사반에서 우수한 성적을 보여 검정고시를 통과하거나 학사학위를 취득했다고 해도 출소 후 아무런 지원프로그램이 없다.

'되돌이표' 인생을 마감하기 위해 지난 8년간 교도소와 보호감호소에서 중학교 검정고시부터 시작해 학사학위를 취득했다는 김모 씨는 출소 후 내내 막노동판을 전전하고 있다. 김 씨는 말한다. 보호감호가 앗아간 것은 단지 감호기간 동안만의 물리적 시간이 아니라 '자신의 청춘이자 전 인생'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