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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연재] 국가인권위원회 들여다보기 : 인권위, 누구 눈치 보나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가 어이없는 민원 답변서를 보내 '동성애자차별반대공동행동'(아래 공동행동)의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공동행동은 지난해 10월 31일, 동성애자 웹커뮤니티 '엑스존'이 청소년유해매체로 규정된 것에 대해 인권위의 의견을 물었다. 지난해 8월 1심 패소 이후 '엑스존'사건에 대한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동성애'를 청소년유해매체의 판단기준으로 삼고 있는 청소년보호법 시행령이 인권의 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의견을 재판부에 제출해 줄 것을 요청한 것이다. 위원회법 28조 1항에 따르면, 인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재판일 경우 위원회가 '법률상'의 문제에 관해 의견을 제출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달 13일 위원회는 이 요청에 대해 "현재 관련 진정사건이 검토 중에 있"으니 결정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라는 취지의 답변과 함께, "엑스존에 대한 유해매체 고시처분은 '음란'을 사유로 하고 있으므로 '법률상'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상'의 문제"라는 이유로 의견제출 불가 입장을 통보했다.

이에 대해 엑스존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이상희 변호사는 "항소심까지 진행되고 있는 절실한 인권 사안에 대해 위원회가 판단을 유보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답변서를 보낼 때까지 위원회가 담당 변호사에게 사건의 자세한 맥락과 의견을 묻는 단 한 차례의 통화조차 시도하지 않은 것도 어이없는 일"이라며 꼬집었다.

인권위 법제개선담당관실의 한병일 사무관은 "관련 진정사건이 검토중인 데다 청소년보호위원회가 관련 조항을 개정할 의사를 갖고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에 따로 의견 제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청소년보호위원회가 구체적인 개정 일정을 내놓은 것도 아니고, 이미 항소심까지 진행되고 있는 중요한 인권 사안에 대해 인권위가 '조만간 어떻게 되지 않겠느냐'는 식의 무책임한 태도를 보인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위원회가 '음란'이 '사실상'의 문제라는 이유로 의견제출을 거부한 것도 문제다. 조광희 변호사는 "누군가를 폭행했는지의 여부는 '사실상'의 문제인 반면, 무엇이 '음란'인가 아닌가의 문제는 가치 판단을 요하는 '법률상'의 문제라는 것이 통설"이라고 설명했다. 이 설명에 따르자면, 결국 위원회가 자신의 권한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고 있거나 아니면 법조항을 제한적으로 해석함으로써 민감한 사안에 대한 판단을 회피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동성애자인권연대의 정률 대표도 "위원회가 다른 국가기관을 의식해서 동성애에 대한 적극적 판단을 회피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위원회의 '눈치보기'를 비판했다.

인권위가 '눈치'를 봐야 할 대상은 다른 국가기관이 아니라, 존엄한 권리를 박탈당한 인권피해자들임을 다시 한번 명심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