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하루소식

[물음표]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영화·인권만화 만든다는데..

"국내 최초의 옴니버스 인권영화 제작!" 9월 9일 열린 인권위원회 전원위원회에는 '인권영화프로젝트'에 대한 보고가 올라왔고, 이어 9월 12일 각 언론사에는 '인권영화 제작'을 알리는 보도자료가 배포됐다.

박광수, 박찬욱, 송해성, 여균동, 이현승, 정재은 감독 등 웬만한 사람은 다 아는 유명 영화감독 6명이 각자 10분 내외로 옴니버스 형식의 단편영화를 제작해 60분 분량의 인권영화를 만든다는 이야기였다.

'우리 사회의 인권 실상을 널리 알리고 국민들의 인권의식을 고양시키는 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취지이고, '인권에 대한 관심을 갖고 폭넓게 창작활동을 펼쳐온' 것이 선정된 감독들의 '자격'이었다.

남규선 공보담당관에 따르면, 감독들이 저마다 작품의 소재를 선정하게 되며, 올 10월말까지 시나리오를 완료해 한달만에 촬영 및 제작을 마칠 계획이라고 한다. 완성된 작품은 국내 개봉관 상영을 목표로 하고, 국제영화제에도 출품할 계획이라고 남 공보관은 밝혔다.

여기서 드는 두 가지 의문. 첫째는 그동안 열악한 조건 아래서 영화판의 바닥을 기며 '인권영화'를 제작해온 독립영화감독들은 왜 빠져있을까라는 점. 인권위가 정한 이번 영화의 주제는 '차별'이며, 여성, 이주노동자, 장애인 등 그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그런데 이미 각 영역별로 꾸준히 인권상황을 추적하고 모니터해온 많은 전문감독들이 존재하지만, 그들 대신 '상업영화'에 주력해 온 감독들이 선택됐다. 선택의 기준이 인권감수성이 아닌 '대중적 인지도'에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두 번째는 한 달이라는 기간 동안 과연 '작품'이 만들어질 수 있을 지에 대한 의문이다. 아마도 연말까지 예산을 사용해야 하는 국가기관의 특성에서 나타난 일정표로 보이는데, 과연 길거리에 보도블럭을 깔 듯 '영화제작'이 이뤄질 수 있을 지, 애초 기획한 만큼의 내용성을 담보할 수 있을지 의문을 지울 길 없다.

9월 23일 전원위원회에는 또 하나의 기획이 보고됐다. 이른바 '인권만화집'의 제작. 인권영화의 제작자와 마찬가지로 국내에서 내로라 하는 만화작가들이 제작자로 참여한다고 한다. 이희재, 조남준, 유승하, 최호철, 손문상, 박재동, 홍승우씨 등 민중미술활동이나 주요 언론사 시사만화작가로 이름을 날렸던 면면들이다. 하지만 역시 전문성보다는 대중성에 치우친 인상이다.

'졸속'의 우려 역시 인권영화와 다를 바가 없다. 9월중으로 기획을 마치고 11월초까지 원고를 완성하며 12월말에는 배포를 하겠다는 것이 인권위의 야심찬 계획이다.

한편 이날 회의에서는 만화집의 유가배포계획을 놓고 인권위원들 간의 논란이 벌어졌다. 공보관은 "대중들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끌어올리고, 참여작가들의 의욕을 살리기 위해서는 단행본 유가판매를 해야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몇몇 인권위원들은 "유가지 판매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며 "인권위의 공익적 취지를 살리고, 광범위한 홍보와 교육이라는 목적에 맞춘다면 무가지 배포가 더 바람직하지 않느냐"는 견해를 피력했다. '전시성' 행정이 아닐까 이런저런 우려를 제기하는 것이 괜한 딴지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