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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윤현식의 인권이야기

폭력배를 키우는 나라


지난 7월 9일 성북구 안암동 재개발 지역에 용역철거반을 사칭하는 3백 명의 건장한 어깨들이 등장했다. 쇠파이프와 몽둥이는 물론이려니와 낫과 화염병까지 들고 나타난 이들에게 불과 10여명 안팎의 지역주민은 무참한 폭력에 피를 흘려야 했다. 돌에 머리를 찍히는가 하면 낫에 발등을 찍히고 몸에 화염병을 직접 맞아 큰 화상을 입는 등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할 폭행을 당했다. 그런데 이들을 실어나른 것은 경찰봉고차와 호송버스였다. 또한 이 폭력배들의 무차별적인 폭행이 이뤄지고 있는 동안 경찰은 외부인의 출입을 차단해줬으며, 폭력배들에게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오히려 부상당한 주민들을 유치장으로 압송했다.

7월 13일 가리봉동의 천지태광 공장에는 노조파괴를 목적으로 용역깡패들이 들이닥쳤다. 놀랍게도 천지태광에 진입한 용역깡패들 중의 일부는 7월 9일 안암동에 들이닥쳤던 철거용역깡패들이었다. 이들은 농성중인 노조원들을 집단구타하고 공장 밖으로 쫓아내는 등 폭행을 자행하였다. 그러던 중 7월 15일에는 전경들이 들이닥쳤는데 엉뚱하게도 용역깡패들과 합세하여 농성중이던 노조원들과 대치하는 한편 외부인의 출입을 차단하는 행위를 하였다.

7월 18일 새벽 대전 용두동 재개발 지역은 안암동 사태의 완벽한 재탕이었다. 해도 뜨기 전부터 진입을 시도한 철거용역들은 거의 광분의 상태에서 주민들을 폭행하였다. 노인들을 무릎 꿇리고 걷어차는가 하면 침탈을 막기 위해 들어갔던 학생들을 집단 구타하고 보기에도 흉측한 무기들을 휘둘러댔다. 이 용역깡패들이 사람이 아직 살고 있는 집마저 포크레인으로 밀어붙이고 해머로 두들겨 부수는 와중에 2개 중대나 되는 경찰들은 외부의 출입을 통제하는 한편 기자들의 취재까지도 방해하는 작태를 보였다.

경찰관직무집행법 제6조는 "경찰관은 범죄행위가 목전에 행하여지려고 하고 있다고 인정될 때에는 이를 예방하기 위하여 관계인에게 필요한 경고를 발하고, 그 행위로 인해 인명 신체에 위해를 미치거나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어 긴급을 요하는 경우에는 그 행위를 제지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그런데 위의 사례들에서 경찰들이 임무를 수행하지 않은 것은 깡패들의 행위가 주민·노동자들에게 신체의 위해를 미치거나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연약한 경찰들이 건장한 폭력배들에게 폭행이라도 당할까봐 무서워서 피한 것일까?

2002년 7월 한달 동안 전국 방방곡곡에서 힘없고 가난해 어디 한군데 하소연할 곳도 마땅치 않은 이 땅의 민중들이 자본에게 매수된 깡패들에게 속절없이 얻어맞아야 했다. 깡패들이야 원래 속성이 그렇기에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시민의 안전과 치안을 유지해야할 민중의 지팡이인 경찰이 깡패들의 바람막이 역할을 어김없이 수행했다는 사실은 우리를 허탈하게 한다. 가난한 사람들에겐 인권도 없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