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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전쟁반대의 양심, 병역거부로

“다른 방식으로 사회에 헌신하겠다”


또 한 명의 젊은이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선언한다. 9일 군대 입영 대신 병역거부의 길을 가게 되는 유호근 씨는 지금까지 다른 이들의 경우와는 달리, 종교적 이유가 아닌 전쟁반대의 신념에서 병역을 거부하게 됐다고 밝히고 있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둘러싼 새로운 논의를 촉발시킬 전망이다. 우리사회에서 현재까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의 거의 전부는 '여호와의 증인'들이며, 지난 해 12월 17일 오태양 씨가 최초로 불자로서 '불살생'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국군 장교가 되는 것이 어릴 적 꿈이었다는 유 씨는 95년 대학에 입학한 이후 "'군인아저씨'에 대한 동경이 전쟁에 대한 혐오 앞에서 자연스레 소멸되어 갔다"라고 말했다. 통일문제를 연구하는 동아리 활동을 했던 유 씨는 한국현대사를 공부하면서 한국 전쟁의 참상과 더불어 전쟁이란 것이 어떻게 인간성을 파괴하는지를 알게 됐고 전쟁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던 것이다.

또한 유 씨는 학교에서 96∼97년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동포돕기 운동, 99년 남북 간의 자유로운 교류와 평화 정착을 위한 활동 등에 참여하면서, '북한은 대립하고 적대시해야 할 대상이기 이전에 함께 돕고 살아가야 할 한민족'이란 굳은 믿음을 갖게 됐다. 유 씨는 "그런데 병역의 이행이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오고 나 또한 동족을 향해 총을 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면서, 병역의 의무에 대해 본질적인 의문을 품게 됐다"라고 밝혔다. 98년부터 유 씨는 병역 문제를 고민하며 입영을 여러 차례 연기했다. 지난해 초부터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아래 연대회의)' 소속 단체 중 하나인 평화인권연대에 연락해,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러나 유 씨는 약 한 달 전 7월 9일자로 마지막 입영통지서를 받기까지도, 병역을 거부하겠다는 결심을 완전히 굳힐 순 없었다.

병역거부를 하면 현실적으로 감옥에 가야하고, 단지 그 하나뿐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고통을 주기 때문이다. 또한 '병역기피자'라는 낙인을 평생의 굴레로 짊어지게 될 것이란 사실도 적지 않은 문제였다.

하지만 결국 유 씨는 병역 거부를 선택했다. "총을 들고 다른 이를 죽이는 연습을 함으로써 발생하는 정신적 고통이 더욱 크게 느껴졌기 때문"이라고 유 씨는 말한다. 또 "정보처리 기사 자격증이 있어 병역특례업체에 갈 수도 있긴 하지만, 그것 역시 4주의 군사훈련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본질적인 해답이 될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유 씨는 "이런 생각은 결코 군인들의 희생을 부정하거나 폄하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나의 양심에 반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회에 헌신할 수 있는 길을 택하려는 것"이라고 말한다. 현재 연대회의는 지난 4일 공청회를 개최하는 등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한 법안을 준비 중이다.

한편, 오늘 아침 10시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유 씨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선언 기자회견을 연다. 유 씨는 이후 국가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서울지방병무청을 방문, 병역거부 사실을 알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