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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제2의 원진레이온 사태인가?

대우조선 직업병 파문 확산 조짐


옛 원진레이온 사태에 버금가는 규모의 직업병 파문이 예상된다. 거제 대우조선소에서 대규모로 직업병 환자가 발견됐으나, 이를 축소․은폐하려는 회사측의 압력과 갈등이 빚어지면서 대우조선 직업병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확대될 조짐이다.<본지 4월 20일자 참조>

지난해부터 올 2월까지 대우조선 노동조합(위원장 김정곤)이 7천여 명의 조합원 가운데 380명을 무작위 추출해 검진을 실시해 보니, 무려 248명이 직업병의 일종인 근골격계 질환 소견자로 드러났다<본지 3월 7일자 참조>. 이 가운데 88명이 요양을 신청해, 현재 76명이 직업병을 인정받고 요양중이다. 전 직원을 대상으로 검진을 실시했을 경우, 직업병의 대명사로 불려온 원진레이온보다도 그 피해규모가 클 수 있음을 시사한다. 1988년 이후 2000년 사이 확인된 원진레이온의 직업병 환자 수는 8백명이 넘었다.


회사측, 산재규모 축소에 안간힘

그런데 회사측이 노동자들의 집단요양신청을 집요하게 방해하고 나서면서, 노동자들의 강한 반발이 일고 있다. 최근 현지 조사를 벌였던 민변 등 진상조사단에 따르면, 회사측이 직업병 판정 조합원에게 '산업재해 포기각서'를 요구하는 등 산재 규모를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진상조사단이 공개한 녹취록에는 "회사에서 치료해 줄 테니 조합에서 하는 사업에 함께 하지 마라"며 요양신청을 가로막거나, 이미 요양에 들어간 노동자에게 "해고시키겠다"고 압력을 넣었다는 증언들이 잇따랐다.

회사측으로선 집단요양에 따른 생산타격과 사회적 파장 등을 고려해 집단요양 최소화를 시도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또 직업병 실태가 심각하다는 판단에 따라 노동부 근로감독이 실시될 경우엔 작업공정이나 작업시간에 대한 시정명령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회사측이 항의농성에 들어간 노조원들을 강제해산하고 곧바로 경찰이 지도부를 전격 구속한 조치 등에 대해 노조측은 사태 확산을 막아보려는 회사측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보고 있다. 김점식 노조 수석부위원장은 "근골격계 문제에 대한 현장 조합원들의 요구가 폭발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했고, 사회적으로 파장이 확산될 것으로 예상되던 시점이었다"며 "회사측에선 파장을 차단하기 위해 노조를 무력화시키려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노조, "노동건강권에는 양보없다"

대우조선 노조는 그간 노동건강권과 산업안전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단호한 태도를 취해온 사업장으로 꼽힌다. 보건복지민중연대의 한 활동가는 "산재 발생시 대부분의 사업장은 보상문제에 집중하는 반면, 대우조선 노조는 작업을 중지하고 회사 내에서 장례를 치르는 등 강력히 대응해 왔다"고 밝혔다.

대우조선 노동자들에게 근골격계 질환이 광범위하게 발견되는 배경엔 구조조정과 그에 따라 갈수록 강화되는 노동강도의 문제가 존재한다. 지난해 대우조선에서는 산재 사고로 8명이 목숨을 잃었고, 이에 노동부가 작업중지를 명령하기도 했다.

한편, 대우조선 사태를 계기로 산업안전시스템의 정비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24일 '노동보건연대회의'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등 사회단체들은 서울 종묘공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근골격계 직업병 실태 파악을 위한 집단 역학조사의 실시와 예방대책 마련"등을 촉구했다. 대우조선 노조 산업안전실장 이외식 씨는 "조합원들은 언제 병에 걸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며 "조합원들이 편안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서둘러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근골격계 질환은 대우조선이나 조선업계만의 문제가 아니며, 건설, 자동차 등 전 업종에 관련된 문제"라고 강조했다. 상황에 따라 이번 사태는 전 업종을 망라한 직업병 문제로 폭발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