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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제58차 유엔인권위 소식 (2) 유엔인권위, 급작스런 일정 축소

민간단체의 참여권, 심각한 타격 예상


제58차 유엔인권위 회기 둘째 주가 시작된 지난 25일, 오전부터 의장단, 각 지역별 그룹이 비상소집하는 등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회의장을 감돌더니, 오후 회의 시작과 함께 의장은 "지난 22일 저녁 유엔 사무총장의 결정으로 일정의 축소가 불가피하게 됐다"고 선언했다. 회의장은 일순간 정적이 감돌았고, 의장단에 배석한 메리 로빈슨 유엔인권고등판무관도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올해 유엔인권위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의제와 발언자 수의 방대함으로 인해, 6주간 거의 매일 저녁 9시까지 회의가 진행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재정문제를 이유로 매일 오후 6시까지 회의를 끝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러한 일정 축소는 곧바로 파행적 회의 진행으로 이어졌다. 이날 저녁으로 예정돼 있던 '고문반대협약 선택의정서에 관한 워킹그룹' 회의가 오후로 앞당겨졌다. 회의에서는 참가국의 일부만이 회의 직전에 보고서를 받은 상황에서 다수 국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날치기로 보고서가 채택됐다.

더구나 이러한 결정은 발언시간 축소 등 민간단체의 참여권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것으로 우려된다. 올해 회의부터 5분간으로 줄어든 발언시간(지난해까지 각 단체 당 7분간 6회)에 대해 대부분 민간단체들이 불만을 사고 있는 와중에, 이번 조치로 인해 또다시 시간과 회수에 심각한 제한이 가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민간단체의 참여권 제한은 이번 회의 초반부터 그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회의 시작 전에 열렸던 사전모임에서 사우디아라비아 대표는 민간단체가 회의장 주변에서 유인물을 배포하는 것에 대해 심한 불만을 제기했으며, 회의가 시작되자 지역에 상관없이 대부분 국가의 대표들이 '민간단체의 기여는 인정하나 참여는 제한돼야 한다'고 일관된 주장을 펼쳤다. 특히 지난 19일 아시아국가 그룹을 대신해 일본 대표는 "회의의 효율성을 위해 민간단체의 참여를 엄격히 규제하고 특정 국가를 겨냥해 정치적 의도가 담긴 발언을 자제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캐나다 등 서방국가 그룹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들이 동의를 표했다.

이러한 경향에 대해 지난 세계인종차별철폐대회부터 줄곧 유엔인권회의들을 모니터해 온 '인권 도큐멘테이션 센터(HRDC)'는 주간소식지 '휴먼라이츠 피쳐'를 통해 "이들 정부의 주목적은 자국의 인권상황에 대한 언급을 원천봉쇄 하려는데 있다"고 비난했다. 한편 "그러나 인도, 파키스탄 등 일부 정부가 사주한 가짜 민간단체(GONGO)들이 유엔의 민간단체 협의 자격을 악용해 회의 분위기를 흐리는 현실도 탄압을 불러일으킨 원인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한편 인권위원회는 이미 지난 2000년부터 하부기관인 인권소위원회의 회기를 축소하고, 특정 국가를 비판하는 일체의 활동을 금지시키는 등의 조치를 취한 바 있다. 또한 일부 평론가들은 올해 선출될 차기 인권고등판무관은 메리 로빈슨의 활약에 대한 각국의 반감으로 인해 무능한 인사가 될 것이라고 점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유엔인권기구의 권한약화에 대해 한 민간단체 활동가는 "유엔에 대해 더이상 '비판적 협력'도 어렵게 될 것 같다"고 실망을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