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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기획> 시효는 없다, 반인도적 국가범죄! ④

반인도적 범죄와 반인권적 국가범죄의 의미


우리 사회에서 ‘반인도적 범죄’라는 개념이 본격적으로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99년 고문경관 이근안의 자수가 계기였다. 이근안은 이미 자신에 대한 공소시효가 지났음을 십분 이용해 제 발로 경찰서를 찾아갔고, 검찰도 이근안의 범죄행위 가운데 상당 부분에 대해 기소를 포기했다. 이에 대해 인권단체와 법률가들은 이근안에 대한 처벌이 가능한 근거로써 ‘반인도적 범죄에는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국제적 원칙을 제시했던 것이다

반인도적 범죄는 ‘crimes against humanity’가 원어로 ‘인도에 반한 죄’라고도 번역된다. 이 개념이 국제사회에서 최초로 정립된 것은 1946년 나찌 전범을 처벌하기 위해 마련된 뉘른베르그헌장에서였다. 이후 1993년 유고전범재판과 94년 르완다전범재판, 그리고 98년 국제상설형사재판소(ICC) 설치를 위한 로마회의 규정 등을 거치며 이제는 확고한 국제관습법상의 개념으로 자리잡게 됐다.

‘살인, 말살, 노예화, 강제이주, 고문, 강간, 성노예화, 강제납치, 기타 비인도적 행위’ 등을 내용으로 하는 반인도적 범죄의 개념은 당연히 일반 범죄와는 다른 요건을 필요로 한다. 그 구성요건은 △민간인을 대상으로 할 것(이 점에서 전쟁범죄와는 구분됨) △광범위하거나 조직적으로(국가만을 주체로 하지 않음) 일어나는 범죄일 것 △일반적인 범죄보다 비인도성의 정도가 더 강해야 할 것 등이다. 유고전범재판 때까지만 해도 ‘무력충돌과의 연관성’이 중요한 구성요소로 언급됐으나, ICC 규정에 와서는 무력충돌과의 관련성이 불필요한 것으로 정리됐다. 우리의 경우, 삼청교육대 사건이나 이근안 고문사건 등은 반인도적 범죄의 대표적 사례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국제사회는 또, 반인도적 범죄에 상응하는 처리 원칙을 만들어왔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시효부적용’의 원칙이다. 68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전쟁범죄와 반인도적 범죄에 관한 시효부적용조약’, 74년 유럽이사회가 채택한 같은 명칭의 조약, 그리고 98년 ICC 근거규정 역시 시효부적용 원칙을 명문화했다. 이는 ‘반인도적 범죄는 시기와 무관하게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는 인류의 의지가 표현된 것이었다.


반인권적 국가범죄도 시효 배제해야

한편, 최근 학계에선 ‘반인권적 국가범죄’(state crimes against human rights)라는 새로운 개념이 제시되고 있다. 반인도적 범죄의 개념에 포괄되긴 어렵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반범죄와 동일하게 처리되어선 안 되는 국가범죄의 유형들이 있기 때문이다. 수지김 간첩조작사건과 같은 경우다. 조국 교수(서울대 법대)는 반인권적 국가범죄의 개념을 “국가권력 종사자가 헌법과 법률에 반하여 시민의 인권을 중대하게 침해하거나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조작한 행위”로 정의하면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전면부정한 중대한 반인권적 국가범죄에 대해서도 공소시효를 정지?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 ‘반인권적 국가범죄 공소시효배제 운동’에 나선 인권단체들은 이 두 가지 개념 모두를 포괄할 수 있는 입법을 촉구하고 있다. ‘반인도적 범죄’의 개념을 국내법으로 수용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당연한 의무이며, 한국적 특수성에서 발생한 각종 국가범죄 유형에 대해서도 응분의 단죄가 요청되기 때문이다.
- 도움말/자료 : 박찬운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