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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세계인종차별철폐대회 참가기 ②

과거 식민주의 높은 관심, 서방국가들 소극적 참여


유엔에 가입한 모든 나라들이 모인 세계인종차별철폐대회 정부간 회의가 지난달 31일 개막했다. 이번 대회를 개막하며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 메리 로빈슨 유엔 인권고등판무관 등은 “인간 존엄성에 대해 새로운 희망을 주어야 한다”, “입으로만 논의하는 자리가 돼서는 안 된다”라는 등의 발언을 통해 대회를 성공적으로 마치고자 하는 의지를 표명했다.

하지만 대회 논의 과정이 순탄한 것은 아니다. 정부간 회의 참가단 면모를 살펴보면, 정상급 대표들은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데니스 싸쑤 은그웨쏘 콩고 대통령,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등 주로 아프리카, 중동 지역 대표들이 참가했고 서방국가에서는 단 한 명도 정상급 대표가 참가하지 않았다. 특히 캐나다, 일본 등은 애초에 참가시키려고 했던 장관급 참가단을 차관급 수준으로 변경해 참가시켰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 인도 카스트문제, 과거 식민주의 문제 등으로 뜨거운 세계인종차별철폐대회가 서방국가들의 수세적이고 소극적인 참여로 인해 김이 빠지고 있다.

지난 1일 폐막한 민간단체 포럼에서 시오니즘을 인종차별이라고 규정한 것에 대해 이스라엘 정부는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으며, 또한 정부간 회의를 폐막하며 채택할 선언에 대한 논의가 하루에 7~8조항 밖에 진행되지 못하는 등 난항을 겪고 있다. 다수결이 아닌 ‘만장일치식’(concensus) 조항 채택 회의를 하기 때문이다.


말로만 반성말고, 문제해결에 나서야

대회 진행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서방국가들과 이른바 제3세계라고 불리는 아프리카 국가간의 갈등이다. 아프리카가 발언하면 서방국가들이 받아치는 회의 모양새가 되고 있다. 서방국가들은 과거 제국주의 시대에 발생했던 노예무역제도, 식민주의에 대한 인종차별적 과오를 인정하고 있으나 이를 공식적 사과나 선언문 채택․자국 역사 교육 강화 등을 통한 적극적인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지 못해 아프리카 국가들이 반발하고 있다. 아프리카 국가들에 있어 보상․배상 문제는 오히려 큰 쟁점이 아니다. 회의 4일째인 9월 3일 현재까지 아프리카 국가들과 서방국가들 사이의 이러한 평행선은 고스란히 유지되고 있다. 또한 유럽 지역에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로마(집시)에 대한 차별․살인 문제, 난민 문제에 대해서도 유럽 대표들은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어 회의장 밖의 민간단체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한편, 아시아 지역에서는 일본 식민주의 청산 문제와 이주노동자 문제가 가장 큰 쟁점이다. 무라야 가오리 일본 외무성 차관은 9월 2일 정부 대표 발언에서 “일본 정부는 학생들에게 세계2차대전 야기한 인류에 대한 재앙에 관해 역사교육을 하고 있다”고 발언해 필리핀, 한국 등 민간단체들이 반발했다. 한국 민간단체 참가단은 3일 회의장 입구에서 일본정부에 대해 과거 식민주의 청산, 군국주의 정책포기, 전범 신사 참배 사과 등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같은 날, 일본 정부 발언에 앞서 한명숙 여성부 장관도 한국 정부 대표발언을 했다. 한 장관은 “여성에 대한 범죄를 없애는 것이 여성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시키는 첫 걸음임을 믿는다”며 “발칸 반도 지역에서 벌어졌던 여성에 대한 강간, 일본 제국주의 통치 당시 종군 위안부 문제 등 외부 세력 점령 당시 발생하는 범죄에 대해 경종을 울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장관은 또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문제와 이주노동자에 대한 보호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많은 쟁점들과 이해 관계가 얽혀있는 21세기 첫 세계대회. 1만5천 여 명의 정부․비정부 참가자들이 이러한 ‘매우 특별한 기회’를 인종차별철폐를 위한 ‘매우 특별한 시작’으로 결론지을 수 있을지 세계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