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하루소식

<논평>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한가?


‘법 앞에 평등하다’고 한다. 하지만 이 말은 사기다. 가진 사람이냐 없는 사람이냐, 권력을 쥔 사람이냐 권력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냐에 따라 법의 결정은 달랐으며, 약자를 보호하기보다 강자의 이해관계에 부응해 온 것이 법이라는 사실은 이미 ‘상식’에 속한다.

27일 서울지방법원과 대법원에서 내려진 두 개의 판결은 자본과 권력에겐 관대하고 노동자에겐 한없이 혹독한 우리의 법 현실 그대로다. 서울지방법원은 99년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의 주역인 진형구 전 대검공안부장에게 면죄부를 줬다. “조폐공사 노사문제에 위법적 간여를 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그것이 “압력 수준은 아니”라는 이유였다. 공안업무의 ‘총사령탑’인 대검공안부장의 ‘간여’가 그저 ‘덕담’이나 ‘충고’에 불과했다는 말인가? ‘불법적 개입은 있었는데 파업유도는 아니었다’는 식의 말장난을 누가 납득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지 재판부에 묻고싶다. 나아가 “조폐공사 파업은 우리가 만든 것”이라던 진씨의 고백마저도 ‘취중발언’으로 이해해 준 재판부의 판단은 자본과 권력에 대한 한없는 자비와 은총을 베푼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검찰과 공안합수부의 의도대로 실제 파업이 진행됐고, 그로 인해 수많은 조폐공사 노동자들이 희생됐다는 진실은 우리 앞에 똑똑히 살아 있다. 구속되고 유죄선고를 받은 노동자도 있었고, 심지어 분신의 상처를 입은 노동자도 있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대법원이 삼미특수강 해고자들 가슴에 내리꽂은 비수는 더욱 잔인하다. 97년 삼미특수강이 포항제철로 인수된 이후 자그마치 1685일. 창원과 서울을 오르내린 해고자들의 행군은 중국의 대장정을 방불케 하고, 넉달여의 노숙투쟁과 집단 단식, 시위와 구속의 악순환, 심지어 가족해체와 비관자살에 이르기까지 해고자들의 눈물어린 기록은 필설로 다할 수 없다. 하지만 대법관들은 그들에게 눈길조차 건네지 않았다. 재판부의 판결문 속엔 ‘자산양도니 영업양도니’ 하는 자본의 논리만 춤추고 있을 뿐, 어떠한 ‘인간의 흔적’도 존재하지 않았다.

“법이란 다 그런 것 아니냐”고 체념하지는 말자. 그래도 우리에겐 꿈이 있기 때문이다. 힘도 없고 돈도 없는 사람들이 스스로 법의 주인으로 설날이 올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며 어떠한 차별도 없이 법의 동등한 보호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세계인권선언 제7조) 이 문구를 온전히 구현할 책임을 저들로부터 거둬들여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