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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기획> 한국 감옥의 현실③ 머리가 아파도, 배가 아파도 치료제는 빨간 약

대전교도소에서는 매년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해 형집행정지로 풀려나는 재소자만 7,80명에 이른다. 청송교도소에서 형집행정지로 풀려난 박모 씨는 대표적인 예다. 박 씨는 지난해 항문 출혈이 계속되자 암을 의심해 의무과장 면담을 요구했다. 그러나 담당교도관과 의무과장은 “치질”이라고 일축했고, 몇 달간의 지루한 싸움을 벌인 끝에야 외부병원에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외부병원에서 직장암 판정을 받았다. 공중보건의로 교도소에서 근무한 바 있는 김모 씨는 “형집행정지는 죽음이 임박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교도소에서 죽을 경우 책임추궁을 막기 위한 방안”이라고 털어놨다.

교도관이 약을 짓고, 소화불량이든 감기든 매번 똑같은 분홍색 약만 주는 곳. 의료기기는 80년대 것들이 태반이고, 부도내고 들어온 의사가 아침에는 의무실로 출근하고 오후에는 감방으로 퇴근해도 감지덕지 해야하는 곳. 2001년 한국교도소의 의료현실이다.


병을 키우는 교도소

두 차례의 감옥살이에 왼쪽 눈의 시력을 잃은 김 모씨(31). 보통사람보다 지능이 낮은 그의 사건은 99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영등포교도소에 수감중이던 그는 같은 방 재소자에게 맞아 왼쪽 눈을 심하게 다쳤다. 곧 교도관에게 고통을 호소했지만 교도관은 이틀이 지난 뒤에서야 의무관에게 보였고, 얼마 후 외부병원에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병원에선 그에게 진단결과를 알려주지 않았다. 교도관에게 누차 물어봤지만 “괜찮다”고만 했다. 그는 어떤 치료나 약도 제공받지 못했다. 그는 출소 후 찾아간 병원에서 좌안 망막박리 및 이차성 녹내장으로 시력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김 씨처럼 교도소 의료문제로 피해를 본 사례는 곳곳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교도소의 열악한 생활환경으로 건강이 악화되는 것은 물론 최근에는 교도소에서 자궁암 진단을 받고서도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사례도 있다. 광주교도소 재소자들은 5달째 의사가 없는 상태로 방치되고 있다.


재소자들은 자유를 박탈당했을 뿐

재소자들은 자유를 박탈당하는 것 이외에 어떠한 권리도 침해받아선 안 된다. 의료의 문제는 더욱 그러하다. 유엔 피구금자 최저기준규칙은 구금시설 의료문제와 관련, 재소자의 안녕을 위해 충분한 일반 의사의 배치와 검진, 치료는 물론 정신과 의사의 정기검진을 의무화하고 있다. 또한 치료이외에 시설의 위생상태와 난방, 배식, 운동 등 재소자의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영역에 대한 감시 및 조언을 의사의 책임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행형법은 고작해야 재소자에 대한 정기검진과 전염병 예방을 의무화할 뿐이다. 그나마 1년에 2회 명문화된 정기검진은 받았다는 사람도 드문데다 받았다해도 ‘검진’이라 부르기조차 민망하다. 정기검진의 항목은 학교 때 신체검사 항목의 복사판이어서 키와 몸무게, 가슴둘레, 시력, 청력, 언어, 혈압 등을 체크하는 정도고, 질병의 유무를 검진해야한다는 항목은 문답과 이상한 결론으로 끝이 난다.

“어디 아프냐?” “특별히 아픈지 모르겠다”- 매우 정상. “소화가 잘 안되고 가끔 어지럽다” -“어디 보자.(청진기 한번 대보고) 교도소 병이다. 나가면 낳는다” - 정상. 도저히 질병을 찾아내 치료할 수 없는 구조다. 정기검진과 관련해 일본의 법원은 이미 30년 전에 “정기검진을 통한 수형자의 질병치료는 구금을 행하는 국가로서 당연히 져야 할 의무”라고 판결한 바 있으며, 독일은 정기검진은 물론 암검진까지 명문화한 상태다.


의사 1명이 1천2백명 담당

의료예산,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수용자는 6만8천여 명에 이르는데 비해 의사 월급등을 포함한 1년 전체 의료비는 23억원(1인당 3만7천원), 의사는 58명에 불과하다. 즉 의사 1인당 수용자 1천2백명의 건강을 책임져야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 상황에서 의사들에게 제대로 된 의료행위를 기대한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경남에 있는 한 교도소에 재직중인 의무관은 “나는 신이 아니며, 매일이 전쟁”이라고 잘라 말한다. 환자를 제대로 진료하지 못하는 책임을 지기엔 의료환경이 너무나 열악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정부당국의 태도다. 보건복지부는 관할책임이 아니라며 교정시설 의료현황에 대해 지금까지 단 한차례의 조사나 감독조차 실시하지 않고 있다. 주무부서인 법무부는 모든 것을 “예산 때문”이라고 항변하며 별다른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재소자도 일반시민이다”

일선교도소 역시 현재의 의료상황에서 외부진료가 재소자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중요한 통로란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인력이 없다” “바깥 구경 나가려는 꾀병이다”란 이유로 외부진료를 엄격히 통제한다. 설령 외부진료가 허가됐다해도 신청자가 많아 3달 이상은 기다려야하니 병이 악화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런 현실에서 96년부터 교정시설의 의료현실을 개선하고자 유럽 12개국들이 머리를 맞대고 그 방안을 고심중인 Health in Prisons Project의 주장은 깊이 새겨들을 만하다.

“재소자들도 일반시민이다. 그들은 언제가 이 사회로 되돌아온다. 만약 그들이 아프고 질병이 있다고 치자. 그러면 어떻게 되겠는가? 병과 그 해악은 가족과 사회에 고스란히 되돌아오게 된다. 재소자들의 건강을 보살피는 것은 재소자와 우리사회 모두에게 분명 이로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