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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논평> 모성보호에 가리워진 여성노동권 후퇴

이른바 ‘모성보호법’이 지난 26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했다. 세 당이 합의처리한 것이니 본회의 통과도 무난할 것이다. 애초 알려졌듯이 여성노동자들의 출산휴가가 30일 연장된다는 건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성보호’로 치장된 근기법 개정안이 여성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후퇴시킬 독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침묵을 지킬 수는 없다.

현행 근기법 제63조(유해․위험사업장 사용금지), 제68조(야업금지), 제69조(시간외근로), 제70조(갱내근로금지)는 여성노동자의 장시간․야간․위험노동 규제를 목적으로 한다. 여성노동자의 모성과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들인 것이다. 그런데 이번 개정 법률안에선 최소한의 조항마저도 아예 삭제되거나 대폭 축소됐다.

일각에선 그런 조항들이 이미 사문화돼서 있으나마나한 장치라고 말한다. 또한 여성도 남성과 동일하게 주12시간까지 시간 외 근로를 할 수 있다고 도리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언제 사용주가 자신에게 불리한 노동법을 알아서 스스로 지킨 적이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새로운 법은 굳이 왜 만드는가. 실효성도 가늠할 수 없는데 말이다. 법률의 존재와 무관하게 많은 여성노동자들이 야간․연장 노동을 강요받아 온 것은 사실이다. 이번에 폐지되거나 완화되는 조항은 그런 행위를 위법하고 부당한 것으로 판단하고 처벌할 수 있는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근기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여성노동자들도 ‘탄력적근로시간제’에 따라 장시간 노동을 감수해야 한다. 또한 법정 근로시간을 초과해 특정 일 12시간, 특정 주 56시간까지 일을 해도 시간 외 수당을 받지 못하게 된다. 이 제도가 도입된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는 불규칙한 장시간 노동에 산업재해․직업병․과로사 등을 호소해왔다.

‘밑바닥을 향한 경쟁’이 아니고서야, 열악한 조건이 같아졌으니 남녀평등이 된 것이라 말할 수 없다. ‘강요된 선택’이 아니고서야 장시간․야간․위험 노동을 감내할 노동자는 단연코 없다. ‘차이’속의 평등을 추구하며 남녀 모두의 인간다운 노동을 향해 가야할 가시밭길을 버리고, 차이 없이 고통을 감내하는 ‘이상한’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셈이다. 조만간 생리휴가제의 폐지 또한 노사정위원회에서 논의된다는 것은 그 불길한 징조가 아닐 수 없다.

여성노동자는 차별 받아온 것이지 차이를 인정받아온 것이 아니다. ‘차이’를 버리고 살아남기 위해서 밑바닥을 향한 경쟁에 뛰어들라는 논리에 우리는 언제까지 휘둘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