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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병역거부’, 이제 말할 때가 됐다

인권․사회단체들, 토론회 통해 공론화


금단의 벽은 허물어질 것인가? 수십년간 군사적 대치의 세월을 보내온 탓에 누구도 함부로 입에 담지 못했던 ‘병역제도’. 올해 초 시사주간지 <한겨레21>의 보도와 함께 사회적 의제로 떠오르기 시작한 ‘양심적 병역거부권’ 문제가 5월 31일 공개토론회를 통해 공론의 장으로 올라왔다.

31일 평화인권연대, 인권운동사랑방 등 9개 사회단체들이 공동주최한 ‘양심․종교의 자유와 군 대체복무를 위한 토론회’에서는 양심․종교에 따른 병역거부권 인정과 이를 위한 군 대체복무제 도입이 적극적으로 주장됐다.


“특정 종교의 문제가 아니다”

발제를 맡은 조국 교수(동국대 법학과)는 “양심적 병역거부권이 결코 특정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오히려 사안의 중대성에도 불구하고 특정 종교인의 부담으로 방치돼 왔다”는 것이 조 교수의 지적이다. 현재 수감중인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약 1천6백 명. 해마다 4~5백 명의 젊은이들이 교도소에 수감되지만, 이들이 특정 종교(여호와의 증인) 신도이고, 기독교단에서 ‘이단’으로 취급되어 온 소수종파였기에, 문제가 방치․외면되어 왔다는 것.

조 교수는 “양심적 병역거부권은 특정 종교인에게 ‘특혜’를 베푸는 것도, 그들만을 위한 것도 아니”라며, “모든 평화주의자들의 양심의 자유를 존중하는 문제”라고 못박았다. 조국 교수는 이어, 1943년 미 대법원의 ‘바네트 판결’을 소개했다. 판결의 요지는 “‘다를 수 있다는 자유’는 사소한 사안에 제한되는 것이 아니며, ‘기존 질서의 심장을 건드리는 사안’에 대하여 다를 수 있다는 자유”라는 것. 즉, “국가존립의 핵심적 사안인 병역의무에 대해서도 이를 거부하는 소수자집단의 양심을 존중하는 것이 곧 민주주의”이며 “양심적 병역거부권은 곧 소수자 인권의 문제”라는 게 조 교수의 주장이다.


대체복무제 도입 시급

양심적 병역거부권이 공론의 대상이 된 만큼, 대체복무제 도입 역시 시급한 과제로 제기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양심을 지키려다 교도소에 수감되는 젊은이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증인 변론을 맡고 있는 임종인 변호사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을 질타하며, 대체복무제 도입을 적극 주장했다. 임 변호사는 “여호와의 증인들은 국가와 싸우려는 게 아니고 군 자체를 부정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입영 자체를 거부하지 않는다”며 “병역특례자를 포함해 이미 7만2천명 정도가 대체복무를 하고 있는 만큼,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가 시급히 도입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론자로 참여한 정진우 목사(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총무)는 “시국관련 양심수보다 더 많은 숫자가 수감중인데도 이제야 공론화된 점에 대해 우리 모두 반성해야 한다”며 “소수자에 대한 배격, 격리보다 공존의 길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하면 병역기피풍조가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와 관련, 조국 교수는 “사전심사, 사후관찰을 통해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징병제 근본 논의 등 갈길 멀어

금기에 대해 도전했다는 점에서 토론회는 개최자체만으로도 큰 의미를 가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대체복무제도의 구체적 방안, 나아가 징병제도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 등 앞으로도 논의해야 할 과제는 많다.

“저는 육군장교로 제대했습니다.” 토론회에서 한 발제자의 느닷없는 ‘커밍아웃’은 ‘군대에 다녀오지 않고는 군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다’는 식의 폐쇄적 논의문화부터 극복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줬다. 한편 이날 토론장엔 과거 병역거부로 인해 징역을 살았던 피해자들이 다수 참여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했다. “법이 없다면 만들어야 하지 않느냐”는 이들의 소박한 주장에 대해 국회와 정부가 적극적으로 답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