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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비정규직과 연대를 외치는 그대가 있을 자리는?

2001년 1월 중계 아울렛 이랜드 단식농성장


이랜드 싸움이 고비를 맞고 있다.

지난 17일로 이랜드 노동조합(위원장 배재석)이 파업한지 216일, 김양수 조직실장 등 조합원 3명이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을 뚫고 단식농성에 돌입한지 8일 째. 회사와 정부, 언론의 냉대 속에 이랜드 조합원들이 외롭게 싸우고 있다.

중계 아울렛 앞은 '엽기', 그 자체다. 아울렛 정문 진입계단 바로 밑에는 성냥갑 모양 단식캠프, 캠프 뒤에는 투쟁가가 쉼 없이 흘러나오는 노조 방송용 차량. 정문과 단식캠프 사이 계단에는 일당 15만원을 받고 투입된 '가빠 입은 어깨'들이 이열 횡대로 줄지어 있고, '어깨'들 오른쪽에는 노조 방송차량 대항용 스피커 소리에 맞춰 나레이터 모델 2명이 열심히 '가무'를 선보인다. 진입로 좌우로 길게 늘어선 12월 10일 중계 아울렛 점거 노조원 폭행사진 게시판, 그리고 수많은 '장애물' 사이를 유유히 빠져 아울렛으로 들어가는 구매자들.

"문득문득 제 정신이라는 게 신기하다"며, 조합원 이은혜 씨는 허탈하게 웃는다. 파업 200일을 넘기면서,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다는 이씨. 그러나, "힘든 건 따로 있다." 친한 조합원에게 파업 중 임금을 보전 받지 못한 채 들어가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열심히 하는 데, 그가 "들어가서 잘 하겠다는 데 왜 이 난리냐"고 역정을 낸다는 것. "박성수가 노리는 게 우리끼리 지치고 힘들어 서로 상처주고 상처받는 것임을 알지만, 그래도 온 몸에서 힘이 빠지더라"고.

3시 반을 넘겨 늦은 점심을 먹으러 까르푸 매장에 들어서자, 곱게 한복을 입은 여직원들이 눈에 띄었다. "구정이 다가와서 그런다"며 여성 조합원이 싱긋 웃는다. "이랜드 매장에서도 제일 싫은 게 대목마다 한복 입는 일"이라고. 그러자, 이은혜 씨가 "쟤는 팔뚝이 굵어서 물건 나르느라 한복 입을 일도 없었다"고 핀잔을 준다. 국사발을 껴안다시피 밥을 먹던 여성 조합원은 팔을 들어 보이더니 "다 집안 내력"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단식자들 두고 밥 넘어가느냐고 묻자, "단식하는 사람들은 괜찮아 보인다, 아직까지는. 정작 문제는 집회에 참가하느라 지쳐 떨어져 집에 누워 있는 사람들"이란다. 분당에서 중계로, 안산에서 부곡으로 하루에도 각 사업장을 다니며 파업투쟁에 참가하다 지친 탓이다. 아니 "미국 유람하느라 바쁜 이랜드 박성수 회장 때문"이다.

다시 돌아온 농성장은 여전히 그대로. 밥 먹을 동안의 생기는 찾아볼 길 없다. 애써 웃음을 지어보지만, 이내 찾아오는 피곤함. 그나마 늦게라도 하나 둘 찾아오는 오는 이가 있어 서로 의지가 된다. 이은혜 씨는 "지금 간부들이 간담회를 하고 있다. 서로 입밖에 내는 걸 두려워하지만 구정이 고비다"고 속내를 털어놓는다. 수염이 덥수룩한 남성조합원은 "파업기간중이라도 임금을 어느 정도 받아야 한다는 점은 모두 동의한다. 그렇지만 당장 힘드니 들어가서 잘하면 된다고 강변하는 이들도 있다"고 말한다. 이은혜 씨는 "들어가자면 들어갈 수도 있다. 다만 정직하게 200일이 넘고 열심히 해도 안되니 그만 접자고 정직하게 말하지 않고, 당신네들이 우릴 이용하는 것 아니냐고 할 땐, '왜 내가 이 고생을 하나'하는 생각도 든다"고. "서로 힘드니까 그러지요." 수염 덥수룩한 조합원이 격해진 이씨를 달랜다. 서로가 숨이 가쁘다.

216일 하루하루가 이토록 숨이 찼는지…. 그 많은 수사는 또 얼마나 낯선지…. "이랜드 투쟁은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끌어안고 200일 넘게 싸운 역사적 투쟁"이라 말하는 그대, 여기에 있어야하는 건 아닌지.

꾸역꾸역 넘어오는 질문만큼 암울한 여기는 2001년 1월 17일 중계 아울렛 이랜드 단식농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