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하루소식

"두 번 죽일 순 없다"

시민단체, 남편살해 여성장애인 구명운동 나서


"이 땅의 여성 장애우들은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하는가!"

상습적인 폭행을 견디다 못해 남편을 살해한 한 여성장애인을 살리기 위해 지역사회는 물론 장애인 단체가 팔을 걷어 부쳤다.

군포 산본 14단지 부녀회를 비롯해 군포 여성민우회, 안양 여성회, 장애우권익문제 연구소 등 8개 지역, 시민단체들은 남편 최갑석(무직, 44) 씨를 살해한 죄로 감옥에 갇힌 '중복 장애인' 유순자(39) 씨의 석방을 촉구하는 공대위를 구성하고, 시민들을 상대로 본격적인 구명운동에 돌입했다. 이미 유 씨의 지역 주민 4백여 명은 유 씨의 석방을 촉구하며 서명운동에 동참했으며, 시민단체 역시 10일부터 본격적인 서명운동에 나섰다. 이들은 유 씨의 구명운동과 함께 이와 같은 사례가 재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여성 장애인이 가정에서 폭행을 당하거나 인권침해를 당하는 위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이들이 쉴 수 있는 '여성 장애인 쉼터' 만들기 운동도 벌여나갈 계획이다.


상습적 폭행… 정당방위적 살인

지체 1급 뇌성마비 장애인이면서 동시에 심한 척추후만증과 언어장애를 가지고 있는 유 씨는 남편의 상습적 구타에 시달리던 중 지난 1월 19일 남편이 심한 폭행을 또 다시 가해오자 과도로 남편을 찔러 살해했다. 경찰에 의해 존속살인죄로 구속된 유 씨는 현재 수원구치소에 수감 중으로, 3월 말로 예정된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경찰과 검찰은 유 씨의 행위를 정당방위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당시 남편인 최 씨는 부인이 폭행 중 실신하자 119에 전화를 걸어 "우리 부부 둘 다 실어가 달라"라는 요청을 해온 바 있는데, 그 과정에서 폭행이 중단됐음에도 불구하고 유 씨가 부엌에서 가져온 칼로 남편을 살해해 정당방위로 보기엔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유 씨의 변론을 담당한 이덕우 변호사는 "정상인의 눈으로 장애인의 경우를 예단해선 공정한 재판이 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이 변호사는 "정상인들이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죽음의 위협을 느낀다면 사람들이 웃겠지만 장애인들의 경우 심한 두려움과 위기감을 느끼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남편의 가혹한 폭행 앞에서 유 씨 역시 죽음의 위협을 느낀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지난 몇 년 동안 유 씨의 집을 오가며 봉사활동을 해온 산본 14단지 부녀회장 최인옥 씨는 "남편이 일을 하기는커녕 유 씨에게 구걸까지 강요했다"며 "그렇게 유 씨가 벌어온 돈으로 남편은 술을 사먹고 상습적으로 유 씨를 폭행했다"고 진술했다. 이어 최 씨는 "보다 못한 주민들이 수 차례 남편을 경찰서에 고발했으나 매번 유 씨가 극구 말려 사태가 해결됐다"며 "신체적 장애 때문에 남편으로부터 유 씨가 겪어야했던 고통을 생각하면 먼저 가슴이 메어온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의 여준민 간사는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가족들의 외면, 그리고 남편의 상습적인 폭행까지 그 동안 유 씨가 겪었을 좌절과 아픔을 생각한다면, 그 누가 유 씨를 단죄할 수 있겠냐"며 "처벌보단 여성 장애인의 가정 내 폭력근절을 위한 국가와 사회의 대책 마련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