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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30년만의 조촐한 추모제

남조선해방전략당사건 권재혁씨


사회주의자 권재혁 씨의 사망 30년을 맞아 4일 독립공원(옛 서대문 형무소 사형장)에서는 과거 동지들을 비롯해 각계원로들과 청년진보당 관계자 등 4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조촐한 추모제가 열렸다.

숙연한 분위기 가운데 고인의 약력이 소개됐고 사회자는 “당시 삼엄한 분위기 속에서 고인의 시신마저 제대로 수습하지 못해 추모제 한번 지내지 못하다가 3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비로소 고인이 처참하게 죽어간 사형장에서 첫 추모제를 열게됐다”며 추모제의 배경을 설명했다.

권 씨는 지난 60년대 노동운동을 하며 전위당 건설을 준비하던 사회주의자로 공안당국에 의해 소위 ‘남조선 해방전략당’ 사건의 수괴로 지목된 후 간첩누명을 쓰고 68년 구속돼 그해 11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당시 권 씨는 남한 변혁운동의 전략을 연구해 남조선 해방전략론이라는 문서를 작성했고 이를 동료들에게 배포한 바 있다. 권 씨는 혁명에 있어 북한과 남한의 사회적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북한과의 연계를 배제한 가운데 자주적이고 자생적인 당을 건설해야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공안당국은 68년 8월 통일혁명당 사건을 발표한 후 계속된 공안분위기를 형성하고자 ‘남조선 해방전략당’ 사건을 일으켰다.


평등세상 꿈꾼 사회주의자

이날 추모제에서 범민련의 김병선 씨는 “고인은 만석지기의 아들로 태어나 최고의 학벌을 수료하고 유학까지 다녀온 인텔리였지만 그것에 안주하지 않고 독재권력에 항거하며 민주화 운동과 노동운동을 전개한 살아있는 운동가였다”고 그를 회고했다.

같은 사건으로 구속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간 복역한 뒤 출소한 이을재(67) 씨 역시 “고인은 철저한 사회보장제도의 실현 등을 꿈꾸며 전위당 건설을 준비한 사람이었으나 당시 공안당국에 의해 간첩으로 몰려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갔다”며 “고인에 대한 명예회복과 진상규명은 반드시 이루어져야하나 아직도 고인을 죽음으로 몰고 간 반공법의 후예(국가보안법)와 당시 공안세력들이 버젓이 활보하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가능하겠냐”며 분개했다.

추모제를 준비한 청년진보당의 최혁대표는 “아직 한국사회는 가족이 나서서 진상규명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때라는 사실이 비통하다”며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국가보안법 등의 악법철폐는 물론 소외받는 사람이 평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