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하루소식

<특집> 헤이그 평화회의를 돌아본다 ③

'코소보에만 전쟁이 있는 건 아니다'

발칸 반도에서의 전쟁이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텔레비전의 화면을 채우는 요즘, 사람들은 그것이 현재 지구상에 진행 중인 유일한 전쟁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이보다 참혹하다. 현재 진행 중인 무력 분쟁은 무려 30여 개를 웃도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무력분쟁이 발생하고 있는 지역의 대부분은 제 3세계 국가라는 점과유럽의 옛 식민지였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이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은 지나치게 낮다.


잊혀진 땅, 죽어간 사람들

이를 반영하듯 아프리카에서 온 평화회의의 한 참가자는 호소했다.

"아프리카에는 수없이 많은 밀로소비치가, 피노체트가 있습니다. 시에라 리옹․콩고 민주공화국․앙골라․이디오피아․메리트리아․수단 …. 하지만 아프리카는 잊혀진 땅처럼 느껴집니다. 우리 안에 평화와 정의가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국제사회의 관심이 필요합니다"라고.

앙골라 한 나라에서 발생한 난민의 숫자만도 전체 1천 150만 인구 중 150만 명, 코소보에서 한 해 동안 2천명이 목숨을 잃은 반면 앙골라에서도 1994년 한 해 동안 이십 만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점은 이 문제의 심각성을 다시금 확인 시켜준다.

하지만 올해 유엔은 평화유지의 역할을 포기한 채 앙골라로부터 철수를 단행했다.

이렇게 낮은 관심은 냉전 종식 이후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의 전략적 이해가 사라진데 기인한다고 지역 전문가들은 말힌다. 그리고 '알바니아계 소수민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명목하에 진행된 나토의 군사행동을 위선이라고 꼬집는다.

제 3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무력분쟁에 대한 관심의 결여는 헤이그 평화회의에서도 마찬가지로 드러나 아쉬움을 자아냈다.

대표적인 예로 발칸 지역에 대한 회의가 4개나 잡혔었던 반면, 다른 지역에서 진행중인 무력 분쟁에 대한 회의는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했다. 또한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평화운동을 하고 있는 제3세계 참가자들의 수도 전체 숫자에 비해 지나치게 적었다. 이와 관련, 회의를 조직한 단체들이 모두 유럽과 미국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한계가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총성이 있는 곳에만 전쟁이 있는 것이 아니다.

헤이그 평화회의에서 논의된 주요 주제 중 하나는 전쟁의 근본원인이었다. 이에 많은 이들은 전쟁의 근본 원인으로 경제의 세계화를 지적했다.

인도의 운동가 반다나 쉬바 씨는 폐막식에서 "다국적 기업에 기반한 경제의 세계화가 민중들의 삶 속에 매월매일의 전쟁을 낳고있다"고 지적했다.

또 라틴 아메리카의 한 인권운동가는 "신자유주의 경제질서가 초래한 심각한 불평등은 사람들로 하여금 불의에 점점 더 익숙해지도록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주장은 전쟁에 대한 보다 넓은 이해를 요구한다.

즉, 총성이 들리는 곳에만 전쟁이 있는 것이 아니다. 불평등한 무역․높은 실업․열악한 노동조건에 의존하는 수출주도 경제 등, 이 모든 것이 민중들에 대한 전쟁이다. 그리고 다국적 기업과 국제금융기구가 보이지 않는 전쟁의 수행자들이다.

개막식에서 동티모르의 독립운동가 호세 라모스 오르타 씨는 "제3 세계에서의 전쟁 위협은 주변 국가들이 아니라 내부의 빈곤으로 온다"며 가난한 국가들의 외채 탕감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러한 요구는 나토 회원 국가들이 지출하고 있는 엄청난 군사비를 감안할 때 전혀 무리한 요구로 들리지 않는다.

나토 회원국들이 1997~98년 2년 동안에만 군사비용으로 4천7백억 달러를 지출한데 비해, 유엔이 발전 프로그램에 드는 비용으로 추산한 액수는 90년대 통틀어 1천537억 달러에 불과하다.


위협받는 땅과 물


새로운 형태의 식민주의 또한 전쟁의 근본 원인 중 하나로 꼽혔다.

이는 많은 선주민들(Indigeneus Peoples)이 과거 대량학살로부터 현재 문화적 억압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고통을 감내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의 땅과 물 역시 군사화․핵지대화에 끊임없이 시달리고 있다. 뉴질랜드 마우리족의 지도자겸 평화운동가인 파울린 탄지오라 씨는 폐막식에서 "인민들의 자결권(Peoples' Self-Determination)이 존중되기 전에 진정한 평화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