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하루소식

<특별기고> 세계인권선언 50돌을 맞아 ②

세계인권선언 반세기


1948년 유엔이 인류의 염원을 담아 세계인권선언을 공포한지 반세기가 되었다. 세계인권선언이 인류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한마디로 사람은 누구나 존귀한 인격체로서 언제, 어느 곳에서든 가치 있는 생활을 할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흔히 천부인권이라 일컫는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 종교의 자유를 비롯한 자유권, 부당한 신체적 구금을 당하지 아니할 권리, 생명권, 국가와 사회를 직접 움직이는 시민의 대표가 되거나 그 대표를 뽑을 수 있는 참정권, 물질적으로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적 기본권 등이 포함된다.

인류가 이 지구상에 출현한지는 과학적으로 백만 년이 경과하였다고 보고되고 있고, 오늘날과 비슷한 국가 체제가 만들어진 지도 길게는 2천년, 짧게는 수 백년이 지났는데도, 겨우 50년 전에야 비로소 사람이 사람대접을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보편적 원리를 인류가 확인한 것은, 다른 부분에 있어서는 몰라도 적어도 인권 분야에 있어서 만은 인류의 이성이 참으로 더디게 발전해 왔다는 느낌이 든다.

유엔은 세계인권선언이 단순한 '선언'을 넘어서 보다 구속력 있는 법적 규범이 되기 위하여 그후 여러 가지 후속 조치를 밟아왔다. 대표적으로 1960년대 후반에 국제인권규약을 결의한 뒤에, 약칭해서 여성인권조약, 아동인권조약, 고문금지조약 등을 체결해 왔다. 이밖에도 국제노동기구의 설립, 난민조약, 소수자 보호를 위한 국제조약 등 비교적 넓고, 세세한 범위까지 세계인권선언의 정신을 구현하기 위한 각종 인권관계조약을 발전시켜 왔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1987년의 6월항쟁 이후 유엔의 회원국이 되는 한편 국제인권규약에의 가입을 필두로 각종 국제인권기구에 구성원 국가로 참여하고 있다.

이처럼 유엔이 각 나라들에게 각종 인권조약의 가입을 촉구하고 체약국의 범위를 확대해 온 가장 큰 이유는 각 나라가 처해 있는 특수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세계인권선언이 담고 있는 정신에 따라 각 나라에서의 인권 수준을 최소한의 높이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긴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제 각 가입국의 정부는 국제사회가 일반적으로 승인한 보편적인 인권규범에 따른 간여를 받게 되었으며, 가입국의 시민은 인권문제에 관한 한 나라라고 하는 좁은 울타리를 넘어 세계여론에 호소할 수 있게 되었다.

구체적으로 국제인권규약을 비롯한 각종 인권조약은 각 체약국의 정부에 그 나라가 인권조약에 규정된 사항을 제대로 시행하고 있는지 보고서를 제출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가입국의 시민이 직접 국제인권기구에 제소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도 1992년 국제인권규약이 부과하는 최초의 정부보고서를 국제인권이사회에 제출한 바 있고, 이후 각 인권조약에 따른 독자적인 정부보고서를 그때그때 제출해오고 있다. 아울러 인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시민단체들은 개별적으로 또는 연대하여 이 정부보고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반박보고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국제인권기구가 이처럼 각 체약국의 정부에 정기적으로 보고서를 제출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는 까닭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국가권력‚이야 말로 인권침해의 주범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도 해방 이후 이승만 정권에서부터 최근의 군사정권에 이르기까지 "국가권력"에 의한 혹독한 인권침해를 경험한 바 있다. 그런 탓으로 그 어느 나라 국민보다도 인권보장의 중요성을 깊게 체험해 온 우리로서, 오늘 공포된 지 반세기에 이르는 세계인권선언의 올바른 의미를 되새겨보는 일은 뜻깊다.

정부가 수립된 지 반세기가 되는 금년은 특히 세계인권선언에 걸맞게 우리의 인권수준이 질적으로 나아질 수 있는지 시험해 보는 계기를 맞이했다. 즉 정부가 오늘 세계인권선언 50주년 기념일에 맞추어 인권법을 제정하고 국가인권위원회를 설립하겠다고 공언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순간까지 정부의 공언은 실현되지 않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인권선언일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훌륭한 인권법과 국가인권위원회를 만드는 일이다.

"국가권력"의 집중에서 오는 폐해를 막기 위하여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예외 없이 권력분립의 원칙을 채택하고 있듯이, 국가권력기구에 의한 인권침해를 방지하고 구제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인권문제에 관한 한 그에 버금가는 위상과 권한을 가진 별도의 국가기구에게 맡기는 것이 맞다.

이렇게 볼 때 현재 법무부가 추진중인, 여전히 "국가권력"의 감독을 벗어나지 못하는, 특수법인의 형태로 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설립 취지는 "국가권력"‚의 세계적 연합체인 유엔이 채택한 세계인권선언의 이념에는 논리적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하루 빨리 제대로 된 인권법과 국가인권위원회를 만들어 명실상부한 인권보장국가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석태 변호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