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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인터뷰> 곽노현(민간단체 공추위 집행위원장)

“인권법 제정, 국민적 협의 필수”


-정부의 인권법 및 국가인권위원회 추진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인데

=인권법은 여느 법과 달리 반드시 국민과 민간단체와의 협의를 거쳐 제정되어야 한다. 이는 인권법이 헌법적 성격을 갖는 법률이기 때문이다. 인권법은 헌법적 기본권 전체에 실효성을 부여하기 위한 법이다. 인권법은 인권에 관한 제반사항을 총체적으로 다루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흩어져 있는 법률에 비해 가장 높은 지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국가인권기구 역시 다른 국가기구를 감독, 견인, 견제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다른 기관에 비해 상위에 위치해야 한다.

따라서 인권법은 헌법에 준하는 제정 과정을 거쳐야 한다. 처음부터 법안을 공개하고 민주적 과정을 거쳐 단일안을 구성하면서 동시에 사회적인 캠페인과 교육을 거쳐야 한다. 단순히 법률이나 기구 하나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국가기구와 법률이 제자리와 제 기능을 찾도록 하는 것이 인권법, 국가인권기구다.

그러나 법무부가 인권법 시안을 대통령에게 보고한 뒤 공개하겠다고 하는 것은 보통의 입법절차와 마찬가지로 인권법을 제정하겠다는 것이다.


-추진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민간단체의 현장성, 창조성, 헌신성을 최대한도로 인정․활용하면서 인권법의 의미와 내용에 대한 범사회적 교육과 홍보, 인권현실 및 과제에 대한 인식이 법안제정 과정과 나란히 가야 한다. 조직된 국민이라 할 수 있는 민간단체를 배제하는 것은 국민을 무시하는 것과 다름없다. 헌법의 제․개정 과정과 마찬가지로 기초과정부터 범국민적 참여가 이뤄져야 한다.


-정부가 설정하는 국가인권위원회는

=소비자보호원, 정부투자기관과 같은 특수법인 형태로 설정하고 있다. 특수법인에 대해서는 감독관청이 있는데, 결국 정부를 감시․감독해야 할 기구가 오히려 법무부의 통제 아래 종속되는 결과가 생길 수 있다.

법무부가 설정한 인권위원회의 권한 역시 취약하다. 겨우 ‘시정권고’ 정도의 수준으로 권한이 설정된다면,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아무 역할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법무부 안에 따르면 약체법정기구가 될 것이 자명하다.

인권에 대한 철학도 없고 인권현실이나 과제에 대한 인식이 결여된 정부가 외국의 입법례만 가지고 인권위원회를 만들다보니 이런 모습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국민들은 아직 잘 모르고 있다

=법무부가 공명심 때문에 대통령에게 법안을 보고할 때까지 엠바고(보도통제)를 걸었다. 방송의 홍보프로그램도 없고, 따라서 학자들 가운데도 그 내용을 이해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현실이다. 검사 몇 명이 법안을 만들면서 각계의 관심과 참여를 배제하는 것은 결국 법무부 뜻대로 밀어부치겠다는 의도에 다름아니다.


-‘공추위’ 결성의 의미와 활동 전망은

=29개 민간단체가 참여한 공추위는 관변단체를 제외하곤 사실상 거의 모든 전국적 민간단체를 망라하고 있는 셈이다. 70-80년대 양심수 문제 등 시민․정치적 권리를 중심으로 활동한 단체와 90년대 여성․장애인․빈민․노동 등 사회․경제적 권리에 초점을 둔 단체들이 자리를 함께 한 것은 뜻깊은 일이다.

공추위의 활동 가운데 특히 국제사회에 활동사항을 홍보하는 것은 커다란 의미가 있다. 우리는 50년만에 인권탄압시대에서 인권보장의 새 시대를 열려고 하는데 이는 헌정사적 인권사적 분수령의 의미를 갖는다. 자력으로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일궈온 끝에 드디어 인권존중의 결의를 내놓는 것은 선․후진국 어디도 경험하지 못한 일로 세계사적 의의를 갖는 것이다.

더불어 공추위는 인권법과 인권위원회를 우리 스스로 창조해내는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정권 프리미엄이 붙어서는 안된다’는 원칙 등을 마련함으로써 파리원칙(93년 유엔인권위에서 채택된 국가인권기구 설립에 관한 원칙)의 한계를 보완, 발전, 개발, 창조하는 역할을 한국의 민간단체가 당당히 떠맡는 것이다.


-법무부에 요청하고 싶은 것은

=법무부의 안은 부서 내부의 안일 뿐이다. 법무부 안을 기정사실화하려는 시도를 중단하고 민간단체와 국민의 토론․검증에 부쳐야 한다. 범사회적인 기초위원회를 구성하고 입법과정과 동시에 인권캠페인이 진행될 수 있도록 협력․지원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