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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주요 발표 요약> ’98 서울국제민중회의 ② 사빠띠스따


디아나 다미안(사빠띠스따 지원단체 소속)


“만약 당신이 나를 도우러 여기에 오셨다면, 당신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여기에 온 이유가 당신의 해방이 나의 해방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라면, 그렇다면 함께 일해봅시다.” -원주민 여성

사빠띠스따의 근원지, 치아파스주는 멕시코에서 자원이 가장 풍부한 주로, 특히 유전의 매장량이 대단히 풍부하다. 그러나 풍부한 자연자원에도 불구하고 학교, 병원 그리고 가장 기본적인 공공서비스 시설 등은 대단히 열악하다. 이러한 불평등은 지난 65년 간의 제도혁명당(PRI)의 지배에서 비롯된 것이다. 제도혁명당의 지배하에서 거대지주들과 그들의 사적인 군대는 강화됐고, 정부와 관료사회는 부패했다. 발전과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원주민 공동체는 붕괴됐고, 원주민에 대한 차별은 더욱 심해졌다.

원주민공동체에 대한 조직적인 폭력과 통제는 사빠띠스따 해방군을 형성시킨 중요한 조건이었다. 북미자유무역협정의 체결은 사빠띠스따의 봉기를 직접적으로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북미자유무역협정은 원주민들의 토지 경작을 보장해주던 헌법 제27조를 폐지토록 했을 뿐 아니라, 멕시코 노동자들을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내몰았기 때문이다.

1994년 1월 1일 사빠띠스따 민족해방군은 모든 멕시코인들을 위한 민주주의, 해방, 정의를 요구하면서 멕시코 남동부의 치아파스 주에서 무장봉기를 일으켰다. 이들은 많은 원주민들이 영양실조에 빠져있고, 치료가능한 병을 갖고서도 병원조차 갈 수 없는 멕시코의 현실을 전세계에 폭로했다. 또 사빠띠스따는 여성․농민 등 제 사회단체에 가난, 착취, 좌절이라는 문제에 대해 함께 토론하자고 제안했고, 다양한 방식으로 운동에 동참할 것을 촉구했다. 정부는 사빠띠스따와의 협의에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많은 협상 이후, 원주민의 권리와 문화에 관한 산 안드레아스 협정이 체결됐다. 그러나 정부는 원주민들에 대한 탄압과 공격을 지속함으로써 두 얼굴을 보였다. 급기야 세디요 대통령은 협정의 체결 자체를 부인하기에 이르렀다.

이 결과, 많은 정치 지도자들이 투옥됐고, 많은 이들이 암살 혹은 실종됐다. 원주민 공동체에 대한 학살 또한 계속되고 있다. ‘악떼알’에서는 50여명을 학살했고, 임신했던 여성의 배를 가르는 잔혹함을 보였다. ‘보스께’에서도 9명이 학살됐다. 정부는 이를 원주민들 간의 분쟁으로 호도하고 있지만, 이러한 학살의 배후에는 정부의 비밀경찰이 있음이 자명하다. 이는 은밀히 진행되고 있는 하나의 전쟁에 다름아니다.

사빠띠스따와 동조자들은 오늘날도 시민불복종으로 저항하고 있다. 이는 세금, 보건, 교육 어떤 것도 정부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결정하고 행하는 것이다. 한편 사빠띠스따의 투쟁은 멕시코에만 머물지 않는다. 세계 곳곳에서 신자유주의에 반대해 저항할 것이며, 스스로를 교육할 것이고 착취를 비난하고 불복종행동을 조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