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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주요 발표 요약> ’98 서울국제민중회의 ⓛ 미국·프랑스 노동자


지난 9일부터 사흘간 서울대학교에서 진행된 서울국제민중회의의 주요 발표내용을 3회에 걸쳐 소개한다<편집자주>.


<완전고용 신화 뒤에서 신음하는 노동자들>
스티브 젤쩌(미국 노동운동가)

낮은 실업율(4.5%)에도 불구하고 최근 미국에서는 식권을 얻기 위해 줄을 서는 사람들이 더 자주 눈에 띈다. 제대로 된 직장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 20년간의 노동 유연화 정책은 대다수 노동자들로 하여금 퇴직금․휴가․고용안정에 대한 어떠한 보장도 받지 못한 채, 이 직업 저 직업을 전전하도록 만들었고, 수천만의 해고노동자들은 계약직 노동자로 전락했다.


실리콘 벨리에는 백발이 없다.

실리콘 벨리는 직업을 가장 많이 창출하는 회사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곳에서 40세가 넘은 이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수십만명이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해고되고 있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 법원마저도, 젊은이들로 대체해 더 많은 이익을 남길 수 있다면 해고가능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회사는 대신 하청 노동자들을 선택한다. 마이크로소프트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이처럼 정규직 노동자를 임시직 노동자로 대체하는 것이 최근의 지배적인 추세다. 임시노동자의 경우, 여러 수당과 보험 혜택을 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일자리 방어를 위한 투쟁

지난 3-4년간 부쩍 늘어난 노동자들의 투쟁은 곧 열악한 노동조건의 부산물이었다.

작년 파트타임 노동의 문제를 제기하며 파업에 들어갔던 유피에스의 경우, 많은 노동자들이 하루 고작 3시간 미만을 계약직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이었다. 이 투쟁은 40년만에 최초로 파업에 대한 여론 조사에서 55%의 지지를 얻었다. 이는 미국 전역의 노동자계급이 계약직 노동의 고충에 대해 공감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최근 노스웨스트와 아메리칸 에어라인 등의 항공사 노동자들도 풀타임 노동으로의 전환과 적당한 월급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다.

미국의 기업들에게 있어 또 하나의 유행은 공장을 국외로 이전하는 것이다. 이것이 국내 공장의 인력 감축을 동반하는 것은 당연하며, 이전된 곳에서는 초기부터 노조결성을 막는데 최선을 다한다. 회사의 목표는 기존의 정규직 파괴를 통해 이윤을 더 창출하고, 노조를 완전히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결과는 전반적인 노동조건의 악화로 드러난다. 이는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많은 공장이 이전해 간 멕시코의 노동조건이 이전보다 50% 이상 나빠졌다는 점은 이를 잘 보여준다.


<프랑스의 실업자 운동>
크리스토프 아귀똥(실업반대 유로마치)


프랑스의 실업자 현황

프랑스의 공식적인 실업자 수는 3천2백만명(전체 노동인구의 12%)이다. 이 실업인구 가운데 1천5백만명은 특별연대수당과 최저수입보조금으로부터 최소한의 생계수당을 지급받고 있고, 다른 절반의 실업자들은 전국실업보험청의 실업보장 기금의 보호를 받고 있다. 그러나 실업수당은 한달에 2천4백프랑으로 주거공간과 먹을 것을 찾는데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게다가 공식 통계에는 어떠한 형태의 실업수당도 지급받지 못하는 25세 이하의 청년 실업자들과 전례없이 증가하는 임시직 노동자들이 포함돼 있지 않다. 대략 2천7백만명에 이르는 이들은 시간제 노동을 강요당하는 까닭에 법정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돈을 벌면서 근근이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프랑스 실업자들이 강력한 사회운동으로 스스로를 조직하기까지는 수년동안의 지속적인 활동과 투쟁이 있었다. 최초로 실업자들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한 활동을 시작한 조직은 노동총동맹(C.G.T)으로 8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활동해왔다.

1994년이 되자 실업에 대항하는 연대투쟁 조직인 “실업에 맞서 행동하자!(AC!)”가 출범했다. 이 운동은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조합 운동가들의 주도하에 만들어졌다. 그들의 주된 목적은 노동조합과 실업단체들, 사회적차별에 대항해 투쟁하는 조직체들 그리고 노동총동맹과 인권동맹 및 수많은 지식인들을 연합하는데 있었다.


3개월 동안의 결정적인 투쟁

1997년 중반 경, 실업자들에게 사회기금의 일부분을 지원해 온 실업사무소는 이 제도를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실업자 투쟁의 불씨를 당겼다. 노동총동맹 소속 실업자들은 실업사무소 건물을 차례차례 점거하기 시작했고, 결국 점거된 기관의 숫자는 40여개에 이르렀다.

한편 다른 실업자 운동단체들은 12월 16일부터 21일까지 “긴급한 사회적 행동” 주간을 선포․조직했다. 이는 일체의 사회적 불평등과 빈곤의 증가에 대항하는 동시에, 최소 실업수당의 증액을 요구하며 투쟁하는 모든 사회운동 단체들을 조직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청년학생들과 임금생활자들로 운동이 확산되기도 했다.


실업자운동의 교훈들

우선, 실업자운동이 수동적이고 자기폐쇄적이라 얘기되는 실업자들 자신에 의해서 주도되었다는 사실이 지적되어야 한다.

둘째, 실업자운동은 프랑스 사회의 전반적인 황폐화를 집중적으로 부각시켰다. 실업의 증가와 직업의 불안정성은 사회의 모든 부분을 불안정하게 만들었고, 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세계가 완전히 거꾸로 돌아가고 있으며, 반드시 무언가 긴급한 새로운 조치가 내려져야 한다는 공통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