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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특별기고>양심수에게 사면은 없었다

정부는 8.15 특별사면을 단행하면서 준법서약서를 제출한 양심수 중에서 백태웅씨 등 69명은 가석방으로, 김낙중씨와 박노해씨 등 25명은 형집행정지로 각각 석방하였다. 그리고 이와 같은 정부의 조치는 사상전향제도를 폐지하고 준법서약제도로 대체하면서 양심수들이 준법서약서를 제출하기만 하면 모두 사면시켜주겠다는 정부의 약속을 이행한 것이라고 떠들어댔다. 그런데 석방된 양심수 94명은 과연 사면된 것이 맞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면된 것이 아니다. 형기를 마치기 전에 석방되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볼 때에는 가석방이나 형집행정지가 사면과의 차이는 없지만, 그밖의 점에서는 다음에서 보는 바와 같이 엄청난 차이가 있다.

사면이란 형사소추와 확정판결에 의한 처벌을 포기하는 제도로서 그 내용은 사면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사면의 종류로는 일반사면과 특별사면의 2가지가 있는데, 이 중에서 특별사면은 확정판결을 받은 자에 대하여 그 형의 집행을 포기하는 제도로서 특별사면이 있게 되면 이후 남은 형기의 집행이 면제된다. 특별사면의 경우에도 예외적으로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에는 일반사면과 같이 이후 형의 선고의 효력을 상실하게 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다.

이번 8.15 특사 때 권노갑씨, 정재철씨 등 한보사건 비리에 연루되었던 정치인들이 '잔형면제'나 '형선고실효'로 풀려났는바, 이들이 바로 진정한 특별사면자들이다. 즉, 특별사면의 효력은 바로 잔형(남아있는 형기)을 면제해 주는 것으로서 향후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사면된 형에 대하여는 다시 집행할 수 없게 된다. 나아가 일반사면과 마찬가지로 형을 선고한 효력 자체를 상실시키는 형선고실효를 받은 자들은 정말 대단한 특전을 받은 것이다. 형을 선고한 사실 자체, 다시 말하여 범죄를 저지른 사실 자체를 없애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번에 풀려난 양심수들에게 적용한 '가석방'제도와 '형집행정지'제도는 어떠한 것인가? 가석방제도는 사면법이 아니라 형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징역 또는 금고의 집행중에 있는 자가 수형생활이 양호하고 개전의 정이 현저한 때에는 무기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10년, 유기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형기의 3분의 1을 경과한 후에는 가석방할 수 있게끔 되어있다. 가석방의 기간은 무기형에 있어서는 10년, 유기형에 있어서는 남은 형기인바, 가석방 처분을 받은 후 이 가석방기간을 경과하게 되면 형의 집행을 종료한 것으로 보게 된다. 따라서 가석방과 사면의 효과는 엄청 차이가 나는바, 무엇보다도 가석방은 무사히 가석방기간이 경과되더라도 단지형의 집행을 종료하게 될 뿐이지 형을 면제받는 것이 결코 아니다. 형선고의 효력 또한 그대로 남아있게 된다.

더군다나 가석방 기간 중에는 보호관찰을 받아야만 한다. 즉, 가석방된 자는 여전히 죄인인 것이다. 다만 원래는 감옥 안에서 형기를 마쳐야만 풀려날 수 있는 것이지만 형기 종료 전에 미리 풀어주고, 가석방기간이 무사히 경과되면 감옥 안에서 형기를 마치는 것과 동일하게 보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가석방된 자가 감시에 관한 규칙을 위반하거나 보호관찰의 준수사항을 위반하면 가석방이 취소되고 다시 감옥 안에서 잔여 형기를 마쳐야만 된다.

형집행정지제도는 형사소송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징역, 금고 또는 구류의 선고를 받은 자 가운데 인도적인 차원에서 볼 때 수형자에게 형의 집행을 계속하는 것이 가혹하다고 보여지는 일정한 사유가 있을 때에는 검사의 지휘에 의하여 형의 집행을 정지할 수 있게 된다. 즉, 형집행정지제도는 말 그대로 감옥에 가둬두는 형의 집행을 일시적으로 정지시키는 것일 뿐이어서 검사가 형집행정지의 사유가 없어졌다고 판단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시효가 완성되지 않는 한) 다시 감옥 안에 가둘 수 있다. 권한의 주체에 있어서도 사면과 차이가 있다. 사면권은 대통령이 행사하지만 가석방은 법무부장관이, 형집행정지는 관할 검찰청의 검사가 그 주체이다.

결론적으로 사면과의 차이를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사면된 자는 향후 범죄를 저지르지만 않으면 다시는 감옥에 가지 않게 되므로 발뻗고 잘 수 있다. 그러나 가석방된 자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더라도 보호관찰처분에 제대로 따르지 않으면 언제든지 다시 잡혀갈 수 있다. 형집행정지로 풀려난 사람은 감옥에 다시 가지 않는다는 보장 자체를 할 수 없다.

따라서 이번 8.15 특별사면조치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은 평가를 내리지 않을 수 없다. 12.12 및 5.18사건, 전-노 전직 대통령 부정축재사건, 한보사건 연루자들은 모두 사면복권되어 완전히 면죄부를 받았다. 그러나 감옥에 갇혀 있던 양심수들에 대한 사면복권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권대통령이라는 몽상 속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이렇게 자족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나 되니까 그렇게라도 풀어준 것이다”라고 말이다.


김도형(변호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