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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현장스케치>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깨지더라도 끝까지”


18일 오후 울산엔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현대자동차 공장 앞을 새까맣게 메운 전경들은 그 음산함을 더하며, 공장으로 통하는 모든 길목을 가로막고 있었다. 때문에 노․사측을 만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서울에서 내려간 홍근수 목사 등 각계인사들은 정문 안으로 들어서지 못한 채 발이 묶이고 말았다. 울산 전역에 감돌던 긴장이 전해지는 순간이었다. 저녁 6시경 정문 앞에서 예정된 민주노총 울산본부의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찾아든 노동자, 시민들도 접근이 불가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합법 집회”임을 주장하며 봉쇄를 풀 것을 호소해도 경찰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전경들은 쇠파이프와 곤봉을 휘둘러대며 사람들을 인근 상가쪽으로 밀어붙였다. 전경들이 휘두른 곤봉에 현대중공업 노동자 김희종(노조 조사통계부장)씨가 머리를 다치는 등 쓰러지고 타박상을 입는 이들이 속출했다. 육교와 상가 옥상에 촘촘히 모여 현장을 지켜보던 시민들은 전경들을 향해 야유를 보냈다. “전경이 사람 쳐요!” “폭력경찰 물러가라.”

울산공장 담장 안에서는 바깥 상황에 격분한 노동자들을 자제시키는 모습이 역력했다. 상공의 헬기에서는 “사내에 잔류하며 농성을 하는 것은 불법이며, 퇴거하지 않을 경우 앞날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협박성의 유인물이 뿌려지고 있었지만 노동자들은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약 1시간 후 가까스로 공장 안으로 들어간 각계인사들에겐, 점점 불어난 집회참가자들이 결국 전투경찰들을 밀어내고 집회를 진행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윽고 각계 인사와의 면담을 가진 김광식 현대자동차 노조위원장은 “정리해고되면 어차피 생존권을 박탈당할테니 깨지더라도 끝까지 현장에 남겠다고 조합원들은 말한다. 부녀자와 어린아이들에게 ‘위험하니 나가라’고 하는데 좀처럼 말을 듣지 않는다”며 현장의 비장한 분위기를 전했다. 노조 기획실장은 “회사측에 인건비를 얼마나 더 절감하면 정리해고를 철회할 거냐고 묻지만 사측에선 딱 잘라 ‘그건 의미없다’고 답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희망퇴직 형태로 8천6백명이 해고되고 월 40-60만원의 임금이 삭감되는 엄청난 고통속에서도 노조측은 어떻게든 정리해고만은 피하기 위해 또다시 2천5백억에 달하는 임금삭감과 노동시간 단축, 순환휴가제 등 고통분담안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사측은 끝까지 정리해고를 고집하고 있다. 이미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라는 정리해고의 전제조건은 사라진지 오래이며, 현대자동차는 정부와 자본의 일대 목표인 ‘정리해고 단행’의 시험장일 뿐이었다. 여기에서 생존권은 관심 밖의 일이다.

지금 이순간, 남아 있는 노동자와 그 가족의 삶까지 책임지고 있는 노조위원장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어 보였다. 중재자를 자처하고 온 노동부장관이나 국회의원들은 한결같이 “수는 최소화하도록 노력할테니 정리해고를 받아들이라”고 노조를 설득해 왔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누구를 자르고 누구를 살리겠습니까? 애초의 정리해고 대상자 1562명 모두의 삶이 보장될 수 있는 방안이 아니면 우리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고 심경을 털어놨다.

저녁 8시 집회장에는 6-7천명은 족히 되어 보이는 조합원과 가족들이 모여들었다. 경찰병력이 배치된 이후, 사람들이 빠져나가기는커녕 더 들어오고 있다는 것이 한 노동자의 설명이다. 상처 입은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앞에 나선 지원 스님(전국불교운동연합 대표)은 “이렇게 해야만 생존을 보전할 수 있다는 것에 자괴감을 느낀다”며 “생명의 손실 없이 온전한 승리를 얻게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밤 11시경 각계인사들은 끝내 사측과의 면담엔 실패하고, 노사간 중재를 위해 내려온 노무현 의원 등 국민회의 중재단을 만났다. 중재단은 공권력 투입 자제를 요청하면서도, 정리해고를 노조가 수용해야 한다는 입장만큼은 다름이 없었다. 면담을 마친 대표단의 일원은 “노동자들은 완전히 절벽 끝에 선 거야”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하루가 지난 19일까지도 협상은 계속 진행 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러나 결과가 어떻게 되든 ‘정리해고’가 노동자들에게 남겨놓은 상처는 쉽게 치유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