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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대우차 해고자, 상처와 회한의 1년

"공장으로 돌아가리라", 복직기원제 열어


* 2002. 2. 19. PM 4:30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정문

거대한 콘테이너 박스가 정문의 양옆을 가로막고, 그 사이로 5미터 남짓 열린 공간에는 군화를 신은 경비용역들이 '인간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다. 경비용역 뒤편으로는 열 대 가까운 전투경찰대 버스와 전경들이 진을 친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지금으로부터 딱 1년 전.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공장에서 농성을 벌이던 노동자와 그 가족들을 거리로 내쫓았던 경찰은 승자의 위세를 과시하는 듯, 그렇게 공장을 지키고 서 있다.

부평공장 경찰력 투입 1주년을 맞은 19일, 대우차 해고자들의 회한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설마 1년이야 갈까 생각했는데…, 가족에게도 1년만 싸우겠다고 약속했었는데, 정말 이렇게까지 올 줄은 몰랐습니다."(해고 조합원) 연인원 수백명이 경찰서 유치장을 들락거렸고, 4월 10일엔 그 끔찍한 경찰폭력마저 경험했던 대우차 해고자들. 하지만 1년이 지났어도 그들의 처지는 달라진 게 없다. 오히려 생계의 부담만 갈수록 가중되고 있다. 다만, 회사쪽에서 '복직'을 언급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해고자들은 일말의 희망을 찾고 있다.

노조 관계자에 따르면, 회사쪽에선 2003년까지 2백명 가량을 순차적으로 복직시키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자연퇴사자가 늘면서 회사로서도 인력이 필요한 상태라는 것. 그러나 복직자 선별작업을 누가 하느냐는 쟁점에 부딪혀 노사간의 교섭은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 2002. 2. 19. PM 2:30 부평역광장

"강제와 감시 속에 우울하고 고통에 찬, 죽음의 고역같은 노동에서 해방되어…위대한 노동자의 깃발 날리자" 원로 노동운동가 오순구 씨가 힘차게 노동해방가를 부르며, 대우차 해고자들의 투쟁을 격려하고 나섰다. 부평공장 정상화와 정리해고 철회, 원직복직을 요구하는 200여 해고자들의 함성이 광장에 메아리치고 있다. 집회장 뒤편에서 아이들과 장난을 치고 있던 해고노동자 차현호(34) 씨를 만나 지난 1년의 소회를 들어봤다.

"대우자동차는 정말 지긋지긋하다. 하지만 아내와 아이 앞에서 떳떳하고 싶기 때문에 투쟁을 포기하지 않는다." 입사 8년만에 정리해고된 차현호 씨는 "나는 노동운동가가 아니다"는 점을 강조했다. "여기 모인 조합원 가운데 8-90%는 아무 것도 몰랐던 사람들이다. 나이 오십이 넘은 형님이 왜 투쟁에 나서겠는가! 그저 묵묵히 일하다 억울하게 쫓겨났기 때문이다."

차현호 씨에겐 복직 못지 않게 걱정스런 문제들이 많다. 가족의 보금자리인 14평짜리 임대아파트에서 쫓겨날 처지부터가 걱정이다. 지난해 8월 차 씨의 가족은 퇴거명령서를 받았다. 해고자는 더 이상 대우차 직원이 아니기 때문에 나가달라는 요구였다. "떠나고 싶지만 갈 데가 없다. 돈이 없을 뿐 아니라, 임대아파트에서 떠나면 투쟁 현장에도 못 나올 것 같아서다." 투쟁이 마무리될 때까진 절대로 집을 비워주지 않겠다는 다짐을 차 씨는 거듭 확인했다.

해고자 가정 모두가 겪는 '생계의 압박' 역시 차 씨로서는 피해갈 수 없는 문제다. 지난해 9월부터 실업급여마저 끊어진 뒤라, 이제는 퇴직금(1천만원 가량)을 까먹으며 지낸다고 한다. 임신중인 차 씨의 아내는 따로 생업전선에 뛰어들 처지가 못 된다. "다섯살 짜리 아들이 가방을 둘러메곤 놀이방에 보내달라고 떼를 쓴다. 놀이방에 보내자면 매달 10여만원 이상을 지출해야 하는데 걱정이다. 해고된 뒤에도 꼬박꼬박 세금을 낼 때면 정말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1년의 과정 동안 많은 것을 잃었다는 차현호 씨. 그러나, 위안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일이 닥쳐도 이겨낼 수 있으리란 자신감을 얻었다. 처음부터 복직을 포기했다면, 앞으로도 쉽게 포기하고 살게 됐을 것이다. 이젠 복직이 안 되더라도 다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 "오늘은 공장 정문을 돌파하는 싸움을 해보고 싶다. 정문을 통과하리라곤 기대도 안 하지만, 그렇게라도 우리 노동자들의 분노를 표출해야 하는 것 아닌가!" 행진대열에 합류하는 차 씨의 목소리가 고조됐다.


* 2002. 2. 19. PM 6:00 부평공장 정문 앞

정문 앞에 모였던 2백여 해고노동자들은 '정리해고 통지서'로 도배한 조형물에 대해 화형식을 갖는 것으로 '복직기원제'를 마무리했다. "더 이상 거리에서 방황하지 않고, 공장으로 돌아가겠다"는 소박한 기원을 확인하며, 이후의 투쟁을 약속하는 것과 함께 해고자들의 하루는 저물었다.


<짧은 인터뷰> 정리해고투쟁 1년의 사람들....

* 4·10경찰폭력 피해자 김낙기씨

4월 10일 경찰의 폭력진압 당시, 가장 큰 부상을 입은 사람은 김낙기(32)씨였다. 허벅지 골절상을 입었던 김 씨는 6개월만인 지난해 10월 퇴원을 했다. 몸 속에 박혀 있는 철심을 제거하기 위한 수술을 앞두고 있는 김 씨는 여전히 다리가 불편하다.

"억울함을 견딜 수 없어서" 복직투쟁에 동참했다는 김 씨는 하루하루가 너무도 답답하기만 하다. "오로지 다시 회사로 되돌아갈 날만 기다린다"는 김 씨. 그의 어머니는 "기술이라도 있으면 다른 직장이라도 찾아볼 텐데…"하며, 안스러운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 정특위 대표 이진성씨

현재 대우차 해고자들의 복직투쟁은 노조 대신에 '정특위'(정리해고철폐특별투쟁위원회)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정특위의 이진성 대표는 "해고조합원들에겐 더 이상 열어줄 가슴이 없을 정도로 악만 남아 있다"며 "빠른 시일 안에 매듭지어져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실업급여가 중단된 이후로 아내와 트러블을 일으키는 조합원들이 늘고 있다. 일부 조합원들은 '야밤에 공장이라도 점거하자'며 답답함을 토로한다"고 전했다. 지난해 해고자들을 상대로 한 취업박람회가 두 차례 열리긴 했지만, 그마저도 실효성은 없는 행사였다는 것이 이 대표의 평가다. "40세가 넘은 해고자들에겐 경비직이나 비정규직 외에 마땅히 일할 공간이 없다. 무책임하게 자르기만 하고, 사후대책은 전혀 없다는 이야기다." 이 대표는 "정리해고는 힘없는 노동자의 가정과 인간성 모두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 전 노조 쟁의부장 김창곤씨

대우차 투쟁의 정점에서 활동했던 김창곤 씨는 지난 5일 경찰에 자진출두한 뒤 풀려나 1년여의 수배생활에서 벗어나게 됐다. 지난 1년의 투쟁에 대한 그의 평가를 들어봤다.

"구조조정 저지투쟁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우리의 싸움은 실제로 패한것으로 볼 수 있다. 상급단체에서 너무 일찍 발을 뺀 점도 있고, 노조 집행부의 전략전술에 한계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다만, 노조 사무실을 되찾고, 교섭이 재개된 것. 그리고 정리해고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분위기를 형성한 것은 성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정리해고가 이미 법제화된 상황에서 싸운다는 것은 너무도 힘든 일이었다."

김 씨는 "사회적으로도 엄청난 비용을 수반하는 정리해고의 비극이 다시는 발생하지 말아야 한다"며 "이제 평조합원으로서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겠다"는 결의를 담담히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