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하루소식

<인권시평> DJ 정권시기의 인권운동, 원칙을 확인하자

김대중씨가 대통령이 되었다. 개표 당일은 물론이고, 당선자 시절에도 긴가민가했는데,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김대중 대통령은..."이란 소리를 열흘 넘게 듣게되니 김대중씨가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을 것을 겨우 실감하게 되었다.

김대중씨는 스스로 곧잘 이야기하는 것처럼 여섯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고, 여러차례 투옥되어 사형선고까지 받았으며, 매일처럼 가택연금을 받았던 고난의 상징과도 같은 사람이다. 6월항쟁의 성과로 복권되기 전까지만해도 한국을 대표하는 저명한 인권운동가였던 그가 대통령이 되었다는 이 엄청난 사실이 어찌 쉽게 믿어지겠는가.

쉽게 믿어지지 않는다는 바로 그 사실에서 고민은 시작된다. 진지한 고민이 부족한 한총련 학생들이야 지금도 '전민항쟁'을 외칠지 어쩔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솔직히 고민이다. 양심수가 3월중에 나오긴 나올텐데, 우리의 바램대로 죄다 나오지 않고, 모양갖추기 식으로 선별적으로 석방되면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풀긴 풀었고 어차피 나중에 다 풀어줄 것이니 환영하고 기대한다는 성명을 내야하는지, 아니면 양심수 전원석방을 외면했다는 이유로 정권 초장부터 반대성명을 내면서 치고 나가야 할지 정말 모르겠다.


고민은 양심수 석방문제에서 멈추지 않는다.

한쪽에서는 그 양반이 살아온 이력으로나 철학으로 볼 때, 양심수 석방이든 재벌개혁이든 다 할텐데, 50년을 기다렸던 우리가 까짓 몇 개월, 몇 년을 못 기다리냐고 느긋하게 굴자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저 비슷한 보수정권, 그것도 쿠데타 세력과 결탁한 정권일 뿐인데, 무슨 기대할 게 있냐고 한다.

모두 일리가 있는 이야기처럼 들려서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겠다. 예전처럼 첨예하게 머리 싸매 가면서 논투, 사투를 벌이지는 않는 요즘 분위기가 고마울 뿐이다.


우린 솔직히 고민이다

얼마 전 요즘 언론께나 타고 있는 북풍조작사건으로 구속된 재미교포 윤홍준 씨의 가족이 우리 위원회를 찾아왔다. 억울하니까 도와달라는 거다. 박홍 신부, 오제도 변호사를 차례로 찾아다녀 보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윤씨를 도울 수 없다'는 말만 듣고 여기까지 찾아왔다나. 서른이 갓 넘은 윤홍준 씨는 북경, 동경, 서울에서 세 곳에서 연쇄적으로 김대중씨에게 뻘건 덧칠을 해대기 위해 '김정일의 자금' 운운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던 사람이니 돕고 자시고 할 것은 없었지만, 윤씨 어머니와 약혼녀의 거친 주장은 왠지 나를 허전하게 만들었다.

윤씨가 구속된지 한 달이 다 되어 가지만, 검찰이 윤씨의 면회를 방해해서, 가족들마저 구치소에서의 면회는 거절당했고, 겨우 검사 입회 하에 검찰청에서 단 한번 그것도 잠깐 얼굴을 보았다는 것이다. 변호사도 두 차례 윤씨를 접견했지만, 역시 검사가 입회한 가운데, 변호인 접견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가족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참으로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긋지긋한 안기부의 용공조작, 그 치떨리는 조작에 놀아 난 윤홍준 씨가 정의의 이름으로 처벌받는 것에 반대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여태껏 설치고 다녔던 박홍 신부, 오제도 변호사도 도와주지 못하겠다는데.

그렇지만 몇푼의 돈 때문이든, 공명심에서였든간에 범죄를 저지른 윤씨를 처벌하는 일이 아무리 정당하다고 해도, 윤씨의 기본권을 제한해서는 안된다. 윤씨의 범죄와 윤씨의 권리는 전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윤씨에게 가족과 변호인의 접견권이 보장되어야 하는 것은 원칙이다.


원칙을 놓치면 진다

그래, 원칙이다. 문제의 답은 원칙에 있다. 이제 김대중씨의 과거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그가 아무리 국민을 위해 원대한 꿈을 꾸었고, 고난을 회피하지 않았고 양심을 지키며 살아 온 보기 드문 탁월한 능력을 지닌 정치인이었다 해도 그의 이력은 이제 더 이상 문제를 푸는 열쇠가 될 수 없다.

우리는 여전히 유효한 답 '원칙'을 부여잡고 나가면 된다. 변호인의 접견권은 조작간첩이나 양심수에게도 보장되어야 할 원칙이지만, 앞으로 감옥에 보내야할 정형근, 이사철, 김일윤의원 같은 반인륜 사범들에게도 보장되어야 할 원칙이다.

전두환씨에게 사형이 선고되었을 때, 우리들은 법원의 결정을 내심 환영하면서 전두환씨를 죽이고 싶은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인권운동가들은 사형제도를 반대하고, 그 철폐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형을 반대하려면 모든 형태의 모든 사형수에 대한 사형을 반대해야 한다. 일반형사범이나 정치범에 대한 사형은 사법살인, 보복살인, 제도살인이고, 전두환씨에 대한 사형은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유혹에 빠져서는 안 된다.

몇 년 전, DJP 연합은 상상도 못할 때, 제일 꼴보기 싫은 것은 노욕(老慾)이라며 김종필씨의 정치적 재기를 꼬집었던 어떤 신문사 논설위원은 같은 자리에서 자세도 고쳐 앉지 않고, 김대중씨의 정계복귀에 대해서는 아데나워를 들먹이며 '경험을 배워야 하고, 경륜을 활용해야 한다'고 했다. 물론 전두환의 사형이야기나, 논설위원의 노욕과 경륜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일리는 있다. 그러나 그 일리가 바로 우리가 쉽게 빠질 수 있는 함정이기도 하다. 김대중 시대를 살아가는 인권운동진영의 생존전략(전술이 아닌), 그것은 휴머니즘이라는 원칙을 부여잡는 일이다. 한번 부여잡으면 절대 놓지 말아야 한다. 놓치면 진다.


오창익(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