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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인권하루소식 1천호 기획- 문민5년 인권정책 평가> <12> 과거청산

과거청산 반대세력의 집요한 방해, 온존된 과거


문민정부의 첫 번째 인권과제는 과거 청산이었다. "과거에 발생하고 지금에 이르고 있는 인권문제의 청산"은 스스로 '문민정부 '를 자처하며 등장한 현정권의 인권의지를 평가 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였다.

우리나라 현대사는 불처벌(impunity)로 점철된 역사였다. 해방정국에서 친일파가 반공 이데올로기를 무기로 다시 권력의 중심부에 등장하였고, 그들은 과거의 행적에 대해 단 한번도 책임진 적이 없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최근 제주 4·3 다큐멘터리 <잠들지 않는 함성- 제주 4·3>에 대한 뒤늦은 입건이나 <레드 헌트>를 문제삼아 국가보안법으로 서준식 씨를 구속시킨 사례는 아직도 이 나라에는 과거청산에 완강하게 저항하는 세력이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었다.

현 정권은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추상적인 선언 외에 체계화된 인권정책을 수립하지도 않았듯이 과거청산에 대해서도 그 태생적인 한계로 인해 손을 대지 못했다.


"역사적 심판에 맡기자"

그 첫 번째 반응은 의외로 일찍 왔다. 김영삼 대통령은 93년 5월13일 광주도청 순회를 하면서 광주문제를 "역사의 심판에 맡기자"고 선언했다. 사실 이 선언은 그 자체보다 과거청산은 자신이 할 수 없다는 본질적인 의미를 밝혔다는 점에서 매우 솔직한 것이었다.

이런 대통령의 입장에 따라 검찰은 신군부세력에 대한 '고도의 통치행위이기 때문에 공소권 없음'이란 결정을 내렸다가 국민적인 저항에 부딪치게 된다. 급기야 대통령은 기존 입장을 한 순간에 뒤집어 '역사 바로 세우기'를 주창하게 되고, 95년 12월 5·18특별법이 국회에서 일사천리로 제정되었고, 전두환·노태우 씨 등 신군부세력이 사법부의 단죄를 받았다. 하지만 대법원이 판결 이전부터 이들에 대한 사면 논의가 정치권을 중심으로 이어지더니 급기야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는 주요 대선 후보들이 모두 이들의 사면에 찬성하는 입장을 표명하게 된다.


과거청산 위한 노력 부족

이처럼 과거 청산을 추진하는 세력은 5·18 특별법 제정 이후 급격히 쇠퇴하였다. 96년 12월17개 인권·사회단체들로 구성된 과거청산국민위원회는 5·18국민위원회를 계승하여 출범하였지만,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한 채 명맥만 유지 해왔다. 반면, 과거청산을 반대하는 세력은 다시 권력 핵심부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과거청산에 어떠한 노력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집요한 모습으로 일관했다.

이러한 과거 청산 반대세력은 매우 광범하게 우리 사회의 핵심부에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95년 신귀영 씨 조작 간첩사건에 대해 하급심에서는 재심청구를 받아들이는 결정을 내렸지만, 결국 대법원이 원심을 파기하는 바람에 좌절되었다. 제2의 광주 학살로 불리는 삼청교육대도 사법부가 공소시효를 문제삼아 기각하는 바람에 청산될 기회를 잃었다. 이로써 행정부나 정치권뿐만 아니라 사법부마저 과거청산에 대한 집요한 방해세력임을 보여주었고 현 정권에서는 무망하게 되었다.

현 정권에서 과거 청산에 조금이라도 근접한 것이 있다면, 매우 제한된 일부 양심수에 대한 사면, 복직과 전교조 해직교사들에 대한 복직, 고문피해자 문국진 씨에 대한 법원의 배상판결 정도였다. 그밖에 4·3의 문제도, 전쟁시기 저질러진 양민학살도, 고문피해의 문제, 의문사, 장기수를 비롯한 양심수의 문제뿐만 아니라 군사독재통치에 활용되었던 수많은 법과 제도도 그대로 온존되고 있다.


진실규명위원회 설치 필수과제

이로써 '역사바로세우기'란 구호가 무색하게 현 정권에서 과거청산은 거의 진척되지 않았다. 과거청산은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아 오늘과 미래의 정의를 세우는 일이다. 자칫 과거를 끄집어내어 문제를 복잡하게 만드는 과정이 과거청산이 아니라, 과거의 문제에 대한 올바른 정의를 내리고, 이로부터 교훈을 세우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우선은 철저한 진실의 규명이 요구되며, 이에 따른 책임자의 처벌과 피해자에 대한 원상회복을 위한 조처가 뒤따라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인권 가해자가 과거로부터 현재, 미래에까지 인권탄압을 통해 승승장구 출세하는 부정의를 막을 수 있고, 이를 통해 피해자와 국민들의 원한을 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진상규명위원회 설치는 필수적인 수단이다.

이제 과거청산은 문민 제2기인 다음정권으로 인계되었다. 과거청산이 차기 정권에서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면 과거의 악행과 인권유린이 다시 21세기에도 재현될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