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하루소식

<인권하루소식 1천호 기획-문민5년 인권정책 평가> ⑨ 통신, 표현의 자유

무자비한 가위질…자기검열로 위축


최근 관객 1백만을 동원, 흥행에 성공한 영화 <접속>은 남녀간의 사랑을 컴퓨터 통신이란 매체를 통해 다루고 있다. 이 영화의 흥행비결은 진부한 사랑얘기를 사이버 공간이란 특이한 소재로 다가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렇듯 불과 4-5년동안 우리사회는 ‘컴퓨터 통신’ 이라는 새로운 미디어를 경험하고 있다. 이제 컴퓨터 통신으로 사람들은 시간과 공간의 차이를 넘어 서로 대화하고, 정보를 공유하며 장미빛 미래에 대한 희망과 환상을 동시에 꿈꾼다. 그러나 감시와 통제가 도사리고 있는 사회에서 장미빛 미래는 그저 환상일뿐 ‘검열’의 칼날은 언제든지 당신의 존재를 소리소문없이 제거할 수 있다.


장미빛 미래 대신 감시와 통제

통신공간에서 검열을 집행하는 법적 근거는 전기통신사업법이다. 96년 개정된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는 “정보통신부장관이 공공 안녕질서와 미풍양속을 해한다고 인정되면 전기통신사업자로 하여금 그 취급을 거부 정지 또는 제한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사실상 검열을 집행하고 있다. 사법부의 판단없이 행정부가 자의적으로 통신사업자로 하여금 이용자의 아이디를 정지하거나 제한하는 것인데, 이때 광범위한 사전‧사후 검열이 진행된다.

최근에는 안기부법과 노동법이 날치기 통과되어 어수선했던 97년 1월 11일 ‘통신보안법’이라고 할 수 있는 전기통신사업법 53조 시행령 16조가 발표되었다. 시행령 16조는 수사기관이 사법부의 영장없이 자의적으로 통신권을 제한조치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통신연대, 민변 등 사회단체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통신보안법 활개

통신공간에서 무자비한 가위질은 최근들어 더욱 심각하다. 97년 국정감사에 따르면, 올해들어 지난 7월말까지 컴퓨터통신 아이디(ID) 사용정지와 폐쇄건수는 3천26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1년치 2천4백13건보다 많은 것이다. 업체별로는 데이콤이 1천8백38명, 나우콤이 6백23명, 한국피시통신이 3백59명의 아이디를 1개월에서 3개월 동안 정지시켰고 삼성에스디에스는 2백6명의 아이디를 폐쇄했다.


통제에 길들여지는 표현의 자유

국가검열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사회통제의 효과는 매우 크게 나타나고 있다. 지난 9월 「정보통신 검열철폐를 위한 시민연대」(대표 장여경, 통신연대)가 천리안, 하이텔, 나우누리 등 4개 컴퓨터통신 이용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61.6%가 ‘자기검열’을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검열은 결국 개인이 향유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를 스스로 제한하게 한다.

더욱이 국가보안법으로 구속 기소된 93년 ‘현대철학동우회’ 김형렬 씨 사건(컴퓨터 통신에 사노맹 등 조직유인물 게제)이나 94년 진상호 씨 사건(공산당 선언 게재), 96년 윤석진 씨 사건(강릉잠수함 무장공비 관련 글 게재) 등을 통해서 볼 때, 결국 공안당국이 의도하는 것은 통신공간에서 “자체검열”이라 할 수 있다.


통신기본권 지키기 운동 활발

그러나, 통신공간에서 통신기본권을 지키기 위한 노력도 활발하다. 96년 7월부터 통신연대는 통신공간에서 표현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들은 통신공간에서 정보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누구든지 정보통신매체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하고, 표현의 자유와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96년 한국을 방문하여, 인권상황을 조사한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에 관한 특별보고관 아비드 후사인 씨는 한국의 검열제도에 대해 다음과 같은 권고안을 내렸다.

“한국정부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에 관한 행정적 간섭을 제한하고, 특히 이러한 권리에 대한 사전제약과 관련하여 기존의 행정절차를 공적인 법절차로 대체할 것을 권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