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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세계의 인권 <17>-연재를 마치며

20세기말의 우울한 인권성적표

여기 보따리를 꾸리는 한 가족이 있다. 엎친데 덮치는 격의 온갖 불행을 겪으면서 이 가족은 지금 살고 있는 곳을 벗어나 새로운 나라를 찾아 떠나야 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이 가족에겐 물러서거나 돌아갈 수 있는 어떠한 지리적,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공간도 존재하지 않는다. 3명의 어른과 이들의 배우자, 늙은 어머니와 태어난지 몇 주밖에 지나지 않은 어린아기를 포함하여 여러명의 어린자녀를 거느린 이 가족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우리가 살고 싶은 나라

6명의 어른들이 모였다. 어떤 나라에 정착하고 싶은가에 대한 꿈과 희망을 나눠보려 했다.

첫번째 사람이 말했다. “모든 건 운에 달린거야. 우리 자신은 우리가 돌볼 수 밖에 없다구. 그러니, 희망사망 따윈 얘기 하지도 말자구.”

두번째 사람이 말했다. “그래, 맞는 말이야. 하지만 어떤 나라에서는 운이 좋을 수도 있어. 우리에게 필요한 건 따뜻한 태양이 비치는 안락한 기후와 아름다운 경관이야. 그것이면 족해.”

“삶의 질은 우리가 어디에 가든지 ‘우리’로 남을 수 있느냐에 달려있어. 우리는 우리만의 말을 계속 쓸 수 있어야 하고 우리 애들에게 우리들만의 특별한 얘기를 해줄 수 있어야돼. 우리 자신의 삶의 방식을 보존할 수 있어야 된다구” 세번째 사람이 말했다.

“물론이지, 어떤 사회에서 우리가 가장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아? 가장 중요한 것은 인종과 문화야. 우리랑 외모가 가장 비슷한 사람들, 생활방식이 비슷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에 가자. 그러면 우리가 두드러지게 드러나질 않을 테고 쉽게 적응할 수 있을거야.” 네번째 사람의 말이었다.

다섯번째 사람이 나섰다. “모두가 맞는 말인데 우리가 먹고 살 수 없다면, 우리가 건강을 유지할 수 없다면 우리의 전통을 보존한다는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그러니까 직업이 있어야 하고 돈이 있어야만돼. 우리가 선택한 나라가 우리에게 보장해줘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상당 수준의 임금을 보장하는 고용이야.”

마지막으로 나선 사람은 말했다. “우리가 사회에서 가치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 곳, 사람들이 우리에게 잘 대해주는 곳을 찾아야해. 이것은 ‘법’에 달려 있어. 괜찮은 인권 기록을 가지고 있고, 법에 의한 지배를 확신할 수 있는 나라로 가자.”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곳

이들 6명은 늙은 어머니 앞으로 가서 자신들의 의견을 얘기했다. 어머니는 갓 태어난 손녀딸을 안고 있었다. 6자녀의 얘기를 듣는 내내 어머니는 아기의 얼굴을 연신 쓰다듬으며 그 깊고 깊은 눈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얘들아, 이 아이가 지닌 힘을 가장 잘 펼쳐낼 수 있는 나라로 가자. 이 아이가 충분히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이 아이의 인성을 충분히 발휘하게끔 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교육일 게다. ‘인권’에 기초한 교육, ‘인권’에 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진 교육, ‘인권’에 의해 계획되고 풍부해지는 교육말이다.”

할머니 품속의 아기가 이 말에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가 동의를 표시하는 것인지 아니면 비웃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우리가 ‘세계의 인권’을 통해 살펴본 주제들-사형, 고문, 실종, 인신매매, 기아, 선주민, 아동노동, 이주노동 등-은 세계인권선언 제정 50주년을 눈앞에 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성적표를 내놓았다.


세계의 인권 현장

▲지난 10년간 60개국 이상에서 수백만 명이 사형을 선고받거나 처형되거나 실종되었다. 1백개국 이상에서 고문에 대한 보고가 끊이지 않고, 60개국 이상에서 양심수가 만들어지고 있다.

▲1천4백만 아동이 매년 5살이 되기도 전에 목숨을 잃고 있다. 1억 이상 인구가 기아에 시달리고 있다. 굶어죽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세계 인구의 1/4이상이 충분한 식량을 얻지 못한다. 10억 이상 인구가 안전한 물을 마실 수 없고, 15억 인구가 적절한 보건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3일마다 14만명의 5세 이하 아동이 기아와 질병으로 쓰러지고 있다.

▲개발도상국에서만 10억이 넘는 인구가 적합한 주택에서 살고 있지 못하고, 집없이 거리에서 떠돌며 사는 사람들이 1억에 달한다.

▲노예제가 금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2억 인구가 노예상태에 매어 노동하고 있으며, 이중 절반이 아동으로서 중노동과 매춘, 구걸에 종사하고 있다.

▲1억3천만 아동이 초등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 10억의 성인 인구가 문맹이고 이중 2/3가 여성이다.

▲1천4백만에서 1천7백만 인구가 난민으로, 1천2백만에서 2천4백만 인구가 국내유민으로 떠돌며 살고 있다. 이들 인구의 80%를 여성과 아동이 차지하고 있다.

▲개발도상국이나 선진국이나 군사비로 지출하는 비용이 국민총생산(GNP)의 15%에 달한다. 제3세계가 군사비로 쓰는 돈은 보건과 교육비로 쓰는 돈에 맞먹는다. 게다가 이들은 매년 수출소득의 20%정도를 외채를 갚는데 써야만 한다.

앞에서 본 가족의 이야기에서처럼 우리는 보따리를 쌀 것과 새로운 선택을 재촉받고 있다. 빨리 이 악순환을 벗어나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