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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후꼬꾸 농성장을 찾아> 휴가도 반납한 채 농성 장을 찾는 동지애


농성 24일째

8월의 폭염 속에서도 한국후꼬꾸 노동자들의 농성투쟁이 계속되고 있다. 남들처럼 변변한 휴가 하루도 없이 후꼬꾸 노동자들의 여름은 명동성당의 천막 안에서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농성장의 기상시간은 아침 7시. 아침체조와 성당주변 청소를 마치고 나면 하루일과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어제는 신한국당, 오늘은 일본대사관, 내일은 압구정동의 권순묵 사장집까지. 말 그대로 강행군의 연속이다. 집회장소에서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것도 벌써 익숙해져 있다. 이렇게 강행군을 거듭하는 속에 후꼬꾸 노동자들은 무려 10만장의 유인물과 스티커 2만부, 벽보 4천장을 소화했다고 한다.


신혼의 단꿈마저 빼앗긴 채

그러나, 장기간의 농성과 푹푹 찌는 더위 속에 농성자들의 피로도 갈수록 쌓여가고 있다. 힘들다보니 때로는 격한 감정대립이 일어나기도 한다. 특히 기혼자들은 보고싶은 아내 생각에 남보다 곱절은 힘든 모양이다.
몇 안되는 기혼자 가운데 한 명인 이재형(28․교육부장) 씨는 지난 5월 결혼식을 올린 초보신랑이다. 하지만, 농성기간동안 아내를 만난 것은 딱 두 번. 그것도 총각 농성자들의 눈치를 보며 몰래 농성장을 빠져나온 덕이었다고 한다. “거짓말도 많이 했습니다. 결혼 전엔 ‘한두 달이면 끝나니까 참어라’고 했다가 이젠 ‘여태까지 해 온게 아까우니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말합니다.”

사내커플이었던 덕에 많은 것을 이해해 주면서도 때론 눈물을 보이는 아내 앞에선 “다 때려치울까”는 생각도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씨는 “틀린 것은 끝까지 고쳐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농성을 포기하지 않을 작정이다. 신혼의 단꿈마저 빼앗긴 이 씨는, 투쟁이 마무리되면 무엇보다도 “가족한테 잘하고 싶다”고 말했다.

고된 투쟁에도 현장상황은 진전 없고 힘들고 지친 농성자들에게 가장 큰 위로는 밤낮으로 찾아오는 격려 방문객들이다. 안산을 비롯한 경기남부지역의 사업장 노조원들은 휴가도 반납한 채 5-10명 단위로 농성장을 찾아 왔다. 대학생들도 20-30명씩 찾아와 숙식을 함께 하기도 했다.

그러나, 서울에서의 고된 투쟁에도 불구하고 안산 현장의 상황은 별로 달라진 게 없다. 회사측은 아직도 공동교섭에 응하지 않고 있으며, 조합원 15-20명은 회사측의 특별감시대상으로 선정되어 있다. 또한 사내에서의 노동조합 활동은 이미 불가능한 상황으로 알려졌다.

8일로 단식농성 24일째를 보낸 윤동만 위원장과 이승환 편집부장은 쳐다보기 안쓰러울 정도의 깡마른 모습이 되어 농성장을 지키고 있다. 방문객들을 맞아 몸을 일으켜 보기도 하지만, 힘겨운 모습은 역력하다. 지난 7일엔 이승환 편집부장의 혈압이 80/40까지 떨어져 농성단을 긴장시키기도 했다.

농성장의 큰 어려움 중의 하나는 역시 재정문제이다. 모아두었던 투쟁기금도 이미 작년 12월에 바닥나버렸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냐는 물음에 한광수(30) 사무장은 한마디로 “개겼다”고 말했다. 현재는 지하철이나 명동주변에서 벌인 모금운동과 각계의 지원금 덕택에 농성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농성단은 재정사업의 하나로 오는 13일 안산시 원곡동 기숙사 단지 내에서 ‘하루주점’을 열기로 했다.

매일 저녁 8시. 후꼬꾸 노동자들은 명동성당 입구에서 정리집회를 가지면서 새로운 결의를 다진다. 그리고 밤 10시부터 새벽 1-2시경까지 이어지는 평가회를 끝으로 명동의 하루일과는 마무리된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한광수 사무장은 “발로 뛰는 일밖엔 없다”며 “외부단체와의 연대, 언론홍보가 절실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