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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인권시평> 과거청산이 민주화의 지름길


이른바 해방이후 지금까지 우리의 정치․사회사는 순간의 영광과 대부분의 오욕으로 얼룩졌다.

이승만부터 보자. 독립운동사에서 그의 위치와 업적은 조직의 우두머리여야 하고 우두머리가 안되면 그 조직을 파괴시킨 것이었다. 그리고 해방이후엔 분단의 수혜자로서 반쪽에서나마 우두머리가 되는데 혈안이 되었다. 일본을 싫어하면서도 친일분자들을 대거 정부요직에 기용했고, 미국을 싫어하면서도 친미정책의 한계를 들어낸 외교의 귀신(?)으로 미화되고 있다. 반민족행위자처벌특별위원회(반민특위)를 폭력으로 와해시킨 이승만은 민족감정도, 정치도의도 저버렸다. 초대대통령으로서 독재의 길만 열었다. 일제때 친일하며 잘먹고 잘산 자들은 이승만 정권에서도 호의호식했다. 4월혁명으로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 것이 드러났지만, 장면 정권의 성향도 민주적이지 못했다. 친일세력과 극우세력의 기승은 여전하였다. 그나마 군사쿠데타라는 역사의 뒷걸음질에 속수무책이었다.


과거청산이 금기사항인 이유

박정희는 어떠한가. 요즘 박정희 향수병이 만연하고 있다. 현재가 안 좋으면 미래에 대한 희망도, 용기도 위축될 수 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회귀본능에 의해 '그때가 좋았지' 라고 정신착란에 빠져버린다. 한때 좌익에 몸을 담았으면서도 집권야욕에 극우․반공을 국시로 삼아 군부독재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 이념도, 정의도 권력 앞에서는 헌신짝이다. 일본군 장교출신이 대통령이 되었으니 과거청산은 금기사항일 수 밖에 없다. 박정희의 집권에 제일 기뻐한 자들이 일본정계의 실력자들이었다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36년째 지배하다가 쫓겨간 일본놈들이 36년 후에 다시 보자고 했다더니 아닌게아니라 1980년대 와서 한일관계를 분석하니 간접침략을 당하지 않은 분야가 거의 없으니 소름이 끼칠 지경이다. 정신대문제 하나 해결하지 않은 채 돈 몇푼 받고 덜컥 한일회담 조약문서에 도장을 찍어줬으니 다시 한번 나라를 팔아먹은 꼴이 되었다. 독립운동 했던 애국자들은 달동네에서 목숨만 연명하며 이런 꼴을 보자니 일찍 못 죽은게 한이라고 탄식을 하고 있다. 박정희 시대 때 득세한 자들도 대부분 친일․극우․독재추종분자들이었다. 이승만 때 장관을 지낸 자가 박정희 때도 장관자리에 오른 것을 그 자의 탁월한 행정능력이라고 보아야 할까? 이승만과 유사한 독재행태를 보이다가 유신쿠데타를 일으켜 군주정시대의 왕보다도 더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 자가 박정희이다.

전두환은 박정희의 적자를 자임했다. 폭압적 독재에서도 유사했다. 광주의 피를 먹고 등장한 전두환은 더욱 더 잔인했다. 삼청교육대의 교육대상자가 오히려 힘을 갖고 삼청교육을 시키려하니 무리를 넘어서서 인간성 말살을 자행하였다. 박정희 때 장관했던 자가 또다시 기용되니 인물기근일까? 독재추종세력의 영원함일까? 노태우의 집권은 죽쑤어 개준 꼴이 되었다. 6월 민주항쟁 열 돌을 맞아 반성할 일이다. 넥타이부대가 데모에 참가했다는 특이함이 6월항쟁의 전부일 수는 없다. 그런데도 데모구경 한번 했다는 부끄러움을 역전의 용사로 자찬하는 무리들이 존재하는 한 민주주의는 아직도 멀리 있다. 6월항쟁과 7․8월 노동자 대투쟁이 한 정권의 말기에 일어났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그렇게 열렬히 항쟁의 대열에 참여했던 많은 이들이 6․29 거짓선언에 깜박 죽어버리다니 그리고 또다시 12․12쿠데타의 주역이 집권을 하게 하다니 참으로 우리 국민의 성향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 이후에도 지금까지 마찬가지다.


김영삼 대통령의 아킬레스건

김영삼이 누구인가? 자랑스럽지 못한 이력의 소유자인 장택상의 비서로부터 시작한 정치이력은 김영삼의 아킬레스건이다. 처음 국회의원을 이승만 정권의 자유당 소속으로 지냈다는 점도 지나쳐서는 안된다. 이러한 과거의 경력과 성향의 연장선상에서 3당야합을 이해해야 한다. 군사쿠데타의 주역들과의 야합은 김영삼의 정치역정에서 최고의 도박이었지만 능히 그럴 수 있는 자였다. 지역감정과 사상논쟁을 이용하여 집권에 성공한 김영삼은 문민정부․개혁이라는 메뉴를 이용하여 국민을 속이려했지만 만사는 사필귀정이다. 장학로 부속실장, 차남 김현철의 비리연루는 무엇으로 해명이 가능할까? 박정희 때부터 집권층을 맴돌던 자들이 여전히 권력의 향유자인데 국민들에게 무슨 희망이 있을까? 김영삼 정권이 말기에 접어든 지금 많은 국민들이 배신감을 느끼며 분노하고 있다. 그렇게 속고도 모자라 또 속아 놓고 아직도 미련을 갖는 자들은 같은 무리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대통령 선거를 맞아

극우폭력의 비인간적 양태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느끼고 있는 것일까? 재벌들의 노동력 착취에 대해 우리는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언론의 보수적 극우논리에 얼마나 저항감을 느끼고 있는 것일까? 이 모든 것들의 해법은 친일과 독재 등 과거청산이다. 과거가 현재를 갉아먹고 있는데 민주화가 제대로 진척될리 없다. 이번 12월의 대통령선거에서도 지역감정과 사상논쟁에 휘말려 속아버리면 이제 더 이상의 희망은 없다. 인권침해의 원흉들이 집권하도록 방조한다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스스로 포기한 국민으로 낙인찍혀 마땅하다.


김동한 (법과인권연구소장 광주여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