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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인권시평> 토지와 인권


세계인권선언은 인권선언이 아니라 ‘종권’선언, 곧 종의 권리선언에 지나지 않는다며 혹평하는 신부님을 알고 있다. 이유인즉 세계인권선언에 토지사용권에 대한 규정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토지에 발을 딛고 살아가게 되어있다. 그러니 토지가 없는 사람, 토지로부터 추방된 사람, 토지가 뱉어낸 사람에게 존엄과 자유가 들어설 자리란 애당초 없다. 살아 생전 송곳 하나 꽂을 땅을 갖지 못한 채 남의 땅을 부쳐먹으며 힘겹게 살다가 죽어서는 묻힐 땅 한뼘 없이 가마니에 둘둘 말려 내던져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세계인권선언은 아무 가치가 없는 휴지조각일 뿐이다. 사정이 좀 나은 경우에도 세계인권선언은 사회복지의 이름으로 최소한의 생존만을 가능케 하는 사후약방문격 거짓 위로이기 쉽다. 그렇기에 토지에 대한 동등한 접근권이 인권의 하나로 규정되지 않은 것은 세계인권선언이나 국제인권법의 커다란 한계가 아닐 수 없다.


과연 토지는 사유의 대상인가

토지는 사유의 대상으로 삼기에 적합치 않은 여러 특성을 갖는다. 토지는 우선 사람이 만든 인공물이 아니다. 이른바 확대재생산이 되지 않는 유일한 재화인 것이다. 그렇기에 성경은 토지는 하느님의 것이라고 규정한다. 또한 토지는 재화중 유일하게 닳지 않는 특성이 있다. 오히려 사람이 많이 다닐수록 토지의 가치는 올라간다. 토지의 닳아 없어지지 않는 성격 때문에 토지의 가치는 객관적으로 도출할 수 없다. 사용가치에 내구연한을 곱해 결정할 수 있는 일반재화와 달리 토지의 경우 내구연한이 무한대이기 때문에 토지가격에는 반드시 투기적 요소가 있게 마련이다. 또한 토지의 닳지 않는 성격 때문에 토지는 부와 권력의 대물림과 영속화의 수단이 된다.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구별은 근본적으로 토지를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구별인 것이다. 나아가서 토지가치는 토지소유자의 노력보다는 사회 전체의 발전에 의해 덩달아 올라가는 것이 특징이다. 그럼에도 개발에 의한 토지가치 증대분은 토지사유제도가 인정되는 이상 고스란히 토지소유자에게 귀속되는 것이 보통이다.


‘부와 권력의 대물림’인 토지

샌프란시스코의 선지자로 불리던 미국의 정치경제학자 헨리 조지는 토지의 이런 특성으로 말미암아 토지사유제도는 비효율적이고 사악한 제도라고 믿었다. 그는 기술발전으로 인한 물질적 풍요 가운데 극심한 빈곤이 사라지지 않는 근본이유를 토지사유 및 토지독점에서 찾고 토지의 소득, 곧 지대(rent)를 모두 세금으로 걷어들여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지금처럼 지대의 일부만을 조세로 걷는 것이 아니라 지대의 전부를 조세로 거둬들이면 잡음이나 충격없이 토지를 공유재산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제도 아래서도 토지소유권은 형식상 지금처럼 개인의 수중에 그대로 있게 된다. 아무도 토지소유권을 박탈당하지 않으며 토지소유규모에 대한 제한도 없다. 그러나 국가가 지대 전액을 조세로 걷기 때문에 누가 얼만큼의 토지가 갖고 있느냐에 상관없이 토지는 실질적으로 공유재산이 되며 사회의 모든 구성원은 토지소유의 이익을 공유하게 된다. 이 제도 아래서는 국가의 조세수입이 넉넉해질 것이므로 다른 세금을 폐지하거나 낮출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자본소득과 노동소득은 그만큼 증대된다. 또한 토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아이디어가 있기만 하면 누구든지 지대를 지불하고 토지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되므로 토지이용의 효율이 대폭 증대된다.


땅주인들이 국회를 지배하는 현상

헨리 조지의 이러한 주장은 톨스토이, 손문, 버나드 쇼 등 수많은 열광적 지지자를 낳았다. 헨리 조지의 생각이 약간이라도 제도화된 덴마크, 뉴질랜드, 홍콩, 대만 등의 나라는 예외없이 경제적 번영을 구가했다. 이제 귀가 솔깃해진 분들은 이런 생각을 우리나라에서 제도화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도 고민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과정에서 우선 주목할 것은 공직자윤리법에 따른 재산공개 결과가 말해주듯이 우리 사회의 경우 국회의원, 기타 고위 공직자들이 예외 없이 엄청난 땅부자라는 사실이다. 입법과 정책을 쥐락펴락하는 사회지도급 인사들이 땅부자이기 때문에 입으로 아무리 토지투기와 불로소득을 근절하자고 외쳐대도 토지세율은 낮기만 하다. 그 결과 아직도 토지소유는 고통의 원천이긴 커녕 경제적 안정과 사회적 지위의 보증수표로 통한다. 요즘 문제되는 고비용저효율경제의 주범도 사실은 높은 땅값이다. 땅값이 터무니없이 높기 때문에 소수의 땅주인만 이득을 보며 온갖 호사를 누릴 뿐 여타의 사회 구성원들은 높은 집값과 상점, 공장 임대료로 막대한 손해를 보게 된다.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헨리 조지의 토지가치 공유비전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땅주인들이 국회를 지배하는 브르조아 정치현상을 타파하는 것으로 출발점을 삼아야 한다. 지난 연말의 항의총파업과 지난 3월 10일의 노동법개정의 실천적 의의는 바로 이를 위한 노동정치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데 있다는 생각이다.

(곽노현 교수 : 방송대 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