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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서울고법, 성폭행범 살해에 무죄선고

성폭력상담소, “정당방위 인정 안해 아쉬움”


강간당할 위기에 처해 자신을 보호하는 과정에서 폭행범을 칼로 찔러 숨지게 한 여인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28일 오전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권성)는 홍아무개(43, 식당종업원)씨의 항소심에서, “홍씨의 행위를 정당방위로 인정할 수는 없으나, 자기방어 과정에서의 불가피한 과잉방어였다”며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야간이었던 점 △피고가 극도의 공포상태에 있었던 점 △피고가 160cm도 안되는 왜소한 체구인데 반해 남자는 180cm에 88kg에 달하는 거구였다는 점 등에 비추어 홍씨의 행위를 불가피한 행위로 판단했다.

홍씨는 94년 10월 우연한 자리에서 만난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하게 되자, 이에 저항하던 과정에서 달려드는 사내를 칼로 어깨를 찔러 숨지게 한 혐의로 입건됐다. 경찰은 홍씨의 진술과 정황을 정당방위로 인정해 이례적으로 불구속수사를 했고, 1심재판도 불구속으로 진행했다. 그러나, 홍씨는 95년 9월 1심에서 2년 6월의 실형을 선고받아 항소중이었다.

재판을 마치고 나온 홍씨는 “그동안 너무나 고통스러운 과정을 보냈다.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빈다”며 북받치는 울음을 애써 참아내는 모습이었다.

이날 재판을 지켜본 최영애 성폭력상담소장은 “재판부의 진일보한 시각을 일단 환영하지만, 홍씨의 행위를 과잉방어로 해석한 것엔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며, “이번 사건이 정당방위로 인정될 때 여성은 보다 당당하게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고, 또다른 성폭력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성폭력을 당한 여성에게 가장 힘든 부분은 주변의 시선인데, 홍씨의 경우엔 주변의 도움이 큰 힘이 되었다. 같이 일하던 식당아주머니가 이 사건을 정당방위로 인식하고 홍씨를 상담소에 연결시켜주는 등 적극적으로 도움을 준 것이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결정적인 힘이었다”며 주변의 올바른 인식과 조력을 부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