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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반인권적 범죄 공소시효 적용 안돼

조사와 처벌만이 진정한 화해의 조건


지난 7월19일 검찰이 5.18 광주 책임자들에 대한 불기소 처분을 내린 뒤, 8월15일로 법적 공소시효가 만료되자 광주학살과 같은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여론이 광범하게 형성되고 있다.

이런 여론을 반영하여 전국 대학교수들도 5.18 책임자 기소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면서 이를 법률안으로 만들어 국회청원까지 하였다. 24일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공동대표 김상곤등)는 광주특별법과 함께 국회에 ‘헌법 파괴적 범죄 등의 공소시효에 관한 법률안’을 청원했다. 이 법률안에는 대상 범죄로 내란죄와 외환죄, 반란죄, 이적죄, 고문이나 집단학살 등의 범죄를 적시하였다. 또, 위 범죄들에 대해서 “법 시행일 이전에 행해진 경우에는 범죄행위 당시부터 공소시효의 적용이 없는 것으로 본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법률안 작성에 중심적인 역할을 한 곽노현(방송대, 법학)교수는 “헌법을 파괴하는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둘 수 없다”며 “공소시효가 헌법적 질서를 준수한다는 전제 위에서 적용 가능한 것이지 헌법질서 자체를 부정하는 범죄까지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박원순 변호사도 최근 발간된 ꡔ역사와 비평ꡕ(역사비평사) 가을호에 실린 「세계 각국은 과거사를 어떻게 심판했는가」라는 논문에서 공소시효 문제와 관련하여 “제2차 세계대전 중의 전범과 비인도적 범죄자들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형태로 공소시효를 제거함으로써 지금도 계속 처벌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법에서 시효를 연장한 독일, 특별법을 두어 처벌을 가능케 한 영국·프랑스, 68년 유엔이 제정한 ‘전쟁범죄 및 비인도적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배제에 관한 조약’(Convention on the Non-Applicability of Statutory Limitations to War Crimes against Humanity, 94년말 현재 39개국 가입)에 가입함으로써 시효의 적용을 배제한 경우 등을 들었다. 박변호사는 “독재정권에 의하여 벌어진 각종의 잔혹한 인권침해 역시 비인도적 범죄의 유형에 속하며, 이러한 ‘국제적 범죄’는 마땅히 시효의 적용이 배제되어야 한다는 이론이 성립, 발전해 왔다”고 밝혔다. 더불어 고문, 살해, 강간, 약식처형, 불법구금 등의 ‘인도에 대한 죄’와 ‘평화에 대한 죄’에 대해서는 소급적용의 예외로 인정하는 것이 대세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법현실은 이와 사뭇 다르다. 헌법재판소의 심리를 기다려 보아야겠지만, 이번 5.18 광주학살 책임자들에 대한 헌법소원에 대해서 대개는 각하 결정을 내릴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헌법재판소가 이전에도 양심수들의 고문 등 가혹행위에 대한 헌법소원에서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각하시키는 등 공소시효를 절대적으로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인권하루소식> 2월 28일자 참조).

박변호사는 논문의 끝부분에서 “과거의 야만스러운 범죄를 망각 속으로 쓸어넣고자 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미래로 향한 길에 방해를 놓고 있는 사람들이다. 고통스런 역사는 그 국민들의 ‘집단적인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게 된다”며 “조사와 처벌이야말로 진정한 화해와 조건들을 이룩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