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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구속에서 석방까지 40여년

비전향 출소 장기수 3인 경력

김선명(70)

25년2월20일 경기도 양평에서 출생. 51년 10월15일 구속.

소학교 졸업 후 가족과 함께 서울로 이사, 8.15 해방 전까지 기계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함.

해방과 동시에 남로당에 입당해 영등포에서 활동하다가 체포령 때문에 지하로 잠적, 인천 등지에서 일하던 중 50년 인민군이 내려오자 서울시당에서 활동. 인민군과 함께 북으로 후퇴, 강동정치학원에서 단기학습을 받고 51년 군사분계선을 넘어 서울로 오다가 체포됨.

전향공작전담반의 강제전향공작시 고문, 구타하는 깡패의 불알을 틀어쥐고 너죽고 나죽자는 각오로 놓지 않고 고함을 외침으로써 교도관과 깡패가 불알을 놓으면 다시는 폭력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기에 이름.

아무것이나 손을 거치면 쓸만한 도구로 바꾸는 재주꾼이고, 낙천적인 성격의 소유자.

어머니와 동생이 서울에 살고 있다. 김씨는 가족들이 사망신고를 해 호적에 사망으로 등재되었기도 했다.

현재 백내장이 심해서 책도 제대로 볼 수 없는 형편이다. 아직 총각으로 ‘총각동맹 부위원장’이라는 동료들의 짖궂은 놀림을 당하기도 하였다고.


안학섭(65)

30년 4월7일 경기도 강화에서 출생. 53년 3월 구속.

개성에서 중학교 재학중 전쟁으로 고향으로 와 민청에서 활동하다가 인민군 후퇴시 경기도당과 함께 후퇴. 강동정치학원에서 교육을 받고, 52년 빨치산으로 태백산맥 방면으로 진출, 활동중 부상당해 53년에 체포.

57년 비전향을 이유로 취업이 중지 당해 독방에 수용됨. 43년간에 걸친 감옥생활 동안의 무수한 고문 구타등 가혹한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수십차례 단식투쟁을 함으로써 위장병이 생기기도 함.

비전향수 역사의 산 증인. 가족은 강화도에서 농사짓는 형님이 살아 계심.


한장호(73)

23년5월1일 함북 나진시에서 출생. 57년 11월20일 구속.

일제 말에 일본 유학중 학병징집을 단연코 반대하고 도피함. 해방 후 서울대학교에 편입해 경제학과를 48년 졸업. 학생시절과 졸업 후에도 계속해서 지하혁망가로 활동하다가 인민군이 서울 입성후 당재건 사업에 참가. 후퇴시 서울시당을 따라 월북해 평양부근 순안에서 중학교 교원으로 근무, 56년 대남공작차 남파되어 무기징역을 받음.

73-75년 광주교도소에서 자행된 가혹한 전향공작기간중 가장 수난을 많이 겪은 사람으로 그때 당시의 후유증으로 인해 지금도 심한 좌골신경통으로 고생하고 있으나, 책벌레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하루종일 책속에서만 생활했다. 서울에 누님이 한분 살아계셔서 옥바라지 해왔으나, 최근 병석에 누운 것으로 전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