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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현대자동차 고 양봉수 씨 해고에서 장례까지>


<2월20일> 현대자동차 노조대의원(의장2부)인 양봉수 씨 해고. 회사가 노조와 의논 없이 신차 마르샤 라인을 추가시키려 하자 항의하여 라인을 일시 정지시킨 것이 이유임. 회사는 이후 양씨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함. 현대자동차 단체협상안에는 노동조건의 변화시에는 반드시 노조와 협상하여 해결하도록 되어 있음.

<3월29일> 의장부 사무실에서 회사와 노조가 신차 라인 추가문제를 협상, 이를 안 양씨가 참석하려 하자 경비 20여명이 집단폭행 하여 전치2주의 상처를 입음.

<5월12일> 오후4시30분경 현대자동차 정문 앞에서 양봉수 씨 분신(전신 75% 3도 화상), 노조 공동소위원회에 참가하려는 양씨를 "해고자는 회사에 들어갈 수 없다"며 회사경비들이 집단폭행한 것이 발단임. 양씨 대구 동산병원으로 옮겨 입원. 현대자동자 노동자 1천5백여명 항의농성 [양봉수동지 분신대책위원회] 구성.

<5월13일> 승용차 1,2부 부분파업 돌입, [울산해고노동자협회] 현대자동차 정문 앞에서 텐트 농성 시작

<5월15일> 제3,4공장까지 파업확산, 밤샘 텐트농성 시작

<5월16일> 회사측 분신대책위 위원장 등 12명을 업무방해혐의로 고소. 분신대책위 주최로 1만5천여명 모여 규탄집회. 민주노총(준) 서울 현대본사에 항의서한 전달

<5월19일> 새벽, 현대자동차에 경찰병력 투입, 텐트농성중인 노동자들 전원 연행. 이때 노조 집행부들이 회사관리자들과 함께 주동자들을 찾아 나서 노조원들의 비난을 삼. 이날 밤늦도록 현총련 소속 노동자 항의시위. 이로 인해 현대자동차 노동자 13명 구속, 12명 수배됨

<6월13일> 양봉수 씨 사망. 양씨는 병상에서 투병중 "나는 죽으려고 하지 않았다. 지금도 나는 살고 싶다. 현자 조합원을 사랑한다. 노동조합을 사랑한다. 엄마, 집에 가고 싶어요"라고 말했다고 함.

<6월14일> 유가족과 현총련 대표단이 노동자장을 결정하고, 양씨의 명예회복과 해고자 복직등을 요구, 노동자들 병원 영안실에서 추모집회 매일 갖기로, 현대자동차 노동자들도 현장에서 매일 추모집회.

<6월15일> 현총련 대표, 현대 본사 항의방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주최로 양씨 추모기도회 가져

<6월17일> 서울, 울산등 전국 6개 도시에서 양씨 추모집회 열려

<6월19일> 양씨 유가족,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회사측과 합의. 대구화장터에서 양씨 화장 후 장지인양산 솥발산 공원묘지로 향하려 하자 경찰이 유골을 탈취, 유가족과 함께 빼돌림.
오후5시30분경, 광주 호남고속도로 청옥동 톨게이트에서 노동자, 학생 4백여명 항의시위
오후7시50분경, 양씨의 유골 영산강 하구언둑에서 강에 뿌려짐
오후5시30분, 울산 현총련, 일산해수욕장에서 노동자 3천여명 추모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