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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긴급구속, 경찰,검찰, 법원의 공조로 유지되는 인권사각지대

“인권침해 없도록 신중 기해야한다”는 집무규칙은 어디로

법원, 오용되는 긴급구속에 정식영장 발부로 면죄부

긴급구속장이 남발되고 있다. 특히 웬만한 ‘공안사건’은 대부분 일단 긴급구속부터 하고 있다. 임의동행을 가장한 불법연행이라는 비난을 벗고 합법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법원도 정식영장을 발부할 때 긴급구속 요건을 제대로 갖췄는가는 전혀 따지는 일이 없으니 긴급구속의 남용을 막을 길이 없다.

형사소송법에 긴급구속의 요건은 △구속자가 사형․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증거인멸 또는 도망의 염려가 있는 경우에 긴급을 요하고, △지방법원판사의 구속영장을 받을 수 없을 때로 제한하고 있다.


긴급구속만 하면 ‘합법’

이런 ‘까다로운’ 긴급구속은, 구속영장 없이도 경찰이 임의동행 형식으로 연행, 사후에 영장을 발부 받는 관행이 인권침해라는 비난과 법원으로부터 문제제기를 받은 뒤 사문화 되다시피한 ‘긴급구속장’이 적용되기 시작했다. 지난해 2월 김영삼 정부 출범 뒤 긴급 구속된 사람은 1만3천7백32명으로 검사가 사후영장을 청구하지 않고 석방한 사람이 5백46명, 법원에서 영장을 기각한 경우가 4백30명에 이르는 등 전체8%에 달하는 9백76명에 대해 사후영장이 발부되지 않은 사실은 긴급구속장 제도의 남발이라는 문제점을 증명해 주는 예이다. 심지어 긴급구속장조차 제시되지 않는 경우가 일어나기도 하며 긴급 구속시 구타 등 인권침해가 여전히 일어나고 있어 합법이라는 형식 갖추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도 한다.


긴급한 경우에만 발부하는 것

긴급구속 시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은 그 사유를 알리고 피의자의 인신을 구금할 수 있는 만큼 긴급구속장의 집행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 따라서 긴급구속 요건 지키기가 중요하게 제기된다. 김칠준 변호사는 “긴급한 경우에 한해서 발급하도록 되어 있는 긴급구속장은 긴급요건을 갖추는 것이 필요한 만큼 특별한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시행되어야 한다”면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대표적 보기로 안기부가 지난 5일 연행, 긴급 구속한 정현백(40,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 등의 예를 들었다. 정교수 등에 대한 마구잡이 연행이라는 비난에 대비해 ‘긴급구속’이라는 방어벽을 만들어 놓은 것이라는 지적이다.


‘인권침해 없게’ 규칙은 전시용

긴급구속장은 ‘긴급요건의 충족’이라는 자격조건만 문제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경찰과 검찰에는 긴급구속이 ‘인권의 침해가 없도록 신중을 기할 것’을 규정한 ‘규칙’이 있다. 긴급구속장에 대한 규정은 ‘사법경찰관리 집무규칙’(27조 1·2항), ‘검찰사건 사무규칙’(24조)에 명시되어 있다. 사법경찰관리 집무규칙을 살펴보면 “사법경찰관은 형사소송법 제206조에 의해 긴급구속을 할 때도 인권의 침해가 없도록 신중을 기하여 긴급구속영장을 작성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경찰과 검찰이 형사소송법에 규정된 긴급구속 요건이 자의적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음을 미리 알고 내부의 규칙을 만들었음이 틀림없다. 아니면 자신들이 편법으로 이용할 것에 대비해 ‘우리도 이만큼 주의를 기울이고 있소’하고 전시용으로 내놓으려고 마련한 규칙이라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검찰, 지휘권방기 의혹

긴급구속장 제도가 일반화 된 데에 대해 검찰 측이 지휘권을 일정정도 방기하거나 포기한 것은 아닌가하는 의혹도 일고 있다. 긴급구속의 집행절차는 검찰의 지휘를 받아 긴급구속 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의 지휘를 받을 수 없을 경우 긴급구속 즉시 사후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으나 사후승인을 요식 절차일 뿐이라는 지적이 많다.


불법 묵인하는 법원, 제꺽제꺽 정식영장 발부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런 긴급구속의 남발과 오용을 정식영장의 심사과정에서 철저히 가려야할 법원이 이에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지난 8월 범민족대회와 관련하여 긴급 구속된 이창복(전국연합 상임의장)·황인성(전국연합 집행위원장)씨 등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 및 구속적부심 때 긴급구속의 요건을 갖추지 않았다는 주장과 수사기관의 명백한 법 위반은 간단히 무시되었다. 이씨 등은 변호인을 통하여 자신들에 대한 긴급구속은 긴급구속요건이 충분하지 않고, 설사 그 요건이 갖춰졌다고 해도 48시간 내에 사후영장을 발부 받지 못할 경우 피의자를 즉시 석방하도록 되어있는 형사소송법 207조를 판사에게 상기시킨바 있다.


‘인신 구금 법원권한’, 법원이 찾아야

‘공안사건’에 있어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는 긴급구속제도를 합법화시킨다는 지적에 대해 유선호 변호사는 “법원이 구속영장 요건을 엄격히 심리해 위배가 될 경우에는 기각하는 것이 마땅하다. 긴급구속이 사법당국의 자의적 인신구속 장치로 악용되고 있다는 의혹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도 반드시 그래야 한다”고 지적했다.


법 집행자의 인권의식이 가장 중요

긴급구속영장제도의 규정을 완화한 긴급체포장제 도입이 형사소송법 개정안에서 얘기되고 있다. 이 제도는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는 피의자를 검사가 발부한 체포장으로 구속한 뒤 48시간 안에 사후영장을 받는 제도로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만 판단하겠다는 것으로 긴급구속 요건충족에 나서는 문제점을 일정정도 해소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인권보장이라는 기본인식이 자리잡지 않는 한 이로 인한 피의자들의 인권침해는 여전히 존재할 것으로 우려된다. 왜냐하면 지난 15일 서울지방경찰청에서 「국제사회주의자 구속자 후원회」 회원들을 긴급구속장을 발부 받았다 면서도 영장을 보여주기는커녕 ‘수갑을 채우고 담요를 뒤집어씌운 채 구타를 하면서 연행’한 사례가 옛날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