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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단체탐방 25 한국사회정책학회

일이 터졌다. 마땅히 정리해 논 자료도 없고 찾으려니 막막하다. 이런 거 어디서 좀 본 것 없어요? 물어물어 찾아보면 문제와는 거리가 먼 난해하고 붕 뜬소리 뿐 이다. 대학가마다 신문지상마다 무슨 무슨 학회, 무슨 무슨 심포지엄 많기도 한데 이 급한 우리 사회의 문제는 어디서 다루나, 전문가의 진단은 이리도 많기만 한데 구체적 프로그램과 대안은 어디로 꼭꼭 숨었나? 현장감, 실무력, 전문적 연구력, 대안제시! 이 모두를 완전 군장 하듯 짊어지고 뛰어야 하는 것인가? 서로를 바라보며 나눠지고 뛸 수는 없는 것일까? 그리고 문제가 닥치기 전에 먼저 고민하기에는 호흡이 너무 벅찬가?

푸념이 길었다. 어느 때보다도 ‘비판을 넘어선 비판’, ‘문제제기를 넘어선 대안제시’가 우리사회의 문제를 고민하고 활동하는 사람들에게 요구되고 고민되는 지금, 위와 같은 푸념을 하기에는 모두의 발걸음이 바쁘고 힘차기만 하다. 오늘은 이런 문제와 가까이 있고자 ‘연구와 운동’을 동시에 고려하는 한국사회정책학회를 만났다.

올해 2월 22일 심창섭‧이금순 두 노인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생활보호급여의 적정기준 문제에 대하여 헌법 재판소에 헌법소원 심판청구를 낸 일이 있었다. 정부가 주는 생활보호급여 6만 5천원과 노령수당 3만원이 수입의 전부인 이들 노부부가 ‘죽기 전에 사람답게 살고싶다는 절규’를 쏟아놓을 수 있도록 징검다리가 되어준 것이 바로 한국사회정책학회였다. 한국사회정책학회의 생활보호대상자 실태조사를 계기로 알게된 학회 측 이남진 변호사를 통하여 이뤄진 헌법소원의 청구취지는 다음과 같다.

보건사회부가 올 1월에 고시한 생활보호사업 지침상의 94년도 생계보호기준이 우리나라의 최저생계비 기준에 못 미치는 낮은 금액을 책정하고 있기 때문에 헌법이 국민에게 보장하고 있는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와 행복추구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사회정책학회의 경제학 연구자들이 발표한 우리나라의 최저생계비수준인 월 10만 5천원을 근거로 하여 볼 때 현재의 월 6만 5천원은 생존만을 간신히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이기 때문에 부끄럽지 않은 국민의 한사람으로 사회에서 떳떳하게 살기 위해서는 생활보호급여를 현실에 맞게 인상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헌법소원청구에 대하여 헌법재판소는 지난 3월 7일 ‘94년 생계보호기준 위헌확인’이라는 제목으로 심판에 회부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위 청구에 대하여 주무부서인 보건사회부는 현행제도에 아무런 위헌요소가 없다는 이유로 헌법소원청구각하를 요구하고 있어 향후 헌법재판소에서 이에 대해 어떻게 심판할 것인가의 향방이 주목되고 있다. 어찌하든 이 문제는 우리나라 사회복지정책의 수준을 법적으로 판가름하는 계기가 되었다.

위 문제에 대하여 지난 6월 11일 ‘최저생활보장을 위한 헌법소원청구에 관하여’라는 제목으로 공개토론회를 가지기도 했던 사회정책학회는 91년 3월에 시작되어 93년 2월에 창립총회를 갖고 정식명칭을 달게 되었다. 19세기 중반의 독일사회정책학회와 영국의 페이비언협회를 모델로 하여 점진적 사회개혁지도모임에 도움이 되고자 한 이 학회는 당면한 사회문제에 관한 실천적인 해결방향과 대책을 제시하여 점진적, 개량 적으로 사회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사회비리의 문제점을 고발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선을 넘어서는 깊이 있는 연구와 정책제시. 그에 관련된 실천에 주력하고자 한다.

현재 학회의 구성원은 사회과학분야를 전공한 대학교 교원 및 동등한 경력을 가진 연구기관의 연구원으로 84명에 이른다. 회원들은 30-40대 중반으로 소위 ‘중견’보다는 ‘현장의식’이 있는 소장 및 일부 중진 학자들이다. 이들은 단순한 학술적 접근이 아니라 사회적 변화에 기대를 가진 사람들이다. 현재는 구성원의 자격을 교직, 연구소 재직수준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나 조직활동이 탄탄히 이루어진 후에는 사회활동가, 대학원생 등을 준회원으로 개방하여 조직의 확대도 고려해 볼 생각이다.

주요 조직구성은 회장 손준규 교수(동국대 사회학과), 부회장 오병선 교수(서강대 법학과), 총무 김종호 교수(연세대 법학과)와 정치‧사회‧경제‧노동‧복지‧주택‧보건‧환경 8개 분과의 간사로 이루어져 있고 여성‧가정‧교육분과를 신설할 예정이다. 각 분과 구성에서 나타나듯 사회과학 분야를 총망라하고 있으며 연계성 있는 학문간에 종합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분과활동의 결실로써 93년 10월에 ‘경제사회발전과 최저생계보장’이라는 주제의 학술발표회와 위에서 말했던 ‘최저생계보장을 위한 헌법소원청구에 관한 공개토론회’를 가진 바 있으며 금년 하반기에는 우루과이라운드, 블루라운드, 그린라운드 등 국제화 개방화 시대에 대비한 국내 사회정책 개혁방안을 모색하는 학술대회를 가질 예정이다. 국제노동기구(ILO)가 제3 자 개입 금지조항이나 공무원의 파업권을 금지하고 있는 노동쟁의 조정법의 개정 등을 권고한 바에서 나타나듯 블루라운드의 서막이 드러나고 있으며 예상되는 문제에 대한 예측과 정책개발이 중요하다고 본다. 특히 노동과 관련된 문제를 중요시하며 이와 관련된 학술발표회만이 아니라 관련단체에의 조언, 관계부처와의 면담과 설득, 매스컴운용 등을 위해서도 적극 노력할 계획이다.

그간 운동세력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는 반면 관습적 운동양식과 ‘즉각적’ 반응 등에 대해 비판적인 사회정책학회는 더 많은 사람을 모을 수 있는 더 많은 시민운동단체들이 생겨서 사회개혁에 기여하기를 기대하며 그 세력들을 모을 수 있는 중추적 이념과 전망제시의 부족을 아쉬워하는 만큼 그 아쉬움을 채우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인권운동사랑방」 류은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