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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간첩 ‘조작’을 만들어온 국정원에게 주목해야 하는 이유

10월 2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부장판사 김우수)는 이른바 ‘서울시간첩조작사건’을 만들어낸 국정원 대공수사팀 직원들에게 실형을 선고하였다. 국정원 대공수사팀과 협조자들은 유우성 씨의 북·중 출입경기록을 조작한 혐의로 사문서 위조 및 행사, 모해증거위조 및 모해증거위조사용 등 혐의로 기소되었고 재판부는 국정원 대공수사팀 김모과장과 대공수사국 이모 처장에게 각각 징역2년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하였다. 또 대공수사팀 권모과장에게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 주선양총영사관 이인철 영사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간첩조작에 앞장선 국가공무원이 사법적인 판단을 받은 것은 고문기술자 이근안에 이어 두번째이다. 그렇지만 국정원 직원들이 수사권을 악용하여 자행한 간첩조작과 증거조작이라는 죄질에 비추어 보면 경미한 형이 선고되었다. 그 이유는 검찰이 이 사건을 국가보안법 상 무고, 날조죄로 기소하지 않고 모해증거위조죄 등으로 기소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검찰은 유우성 씨 간첩조작사건에 기소를 담당한 관련 검사들을 모두 무혐의 처분하였다. 

경찰, 군, 국정원 등 공안기구들이 간첩을 ‘조작’해온 역사가 어디 한두해 짓이던가. 그럼에도 이번 판결이 갖는 의의는 조작에 관여한 국정원 직원들을 ‘재판’에 세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걸음을 내딛었다는 점이다. 1970~80년대 조작된 조작간첩 사례들이 재심을 통해 무죄를 받고 그에 따라 국가가 배상을 했다. 하지만, 고문 등 불법행위를 한 공무원들을 정의의 이름으로 죄를 묻지 못했던 경험과 비교하면 이번 판결은 불처벌의 관행을 조금이나마 중단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법원의 선고로 간첩조작을 해온 국가공무원들이 면책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그동안 ‘간첩조작’을 만들어낸 공안기구들을 없애거나 조작에 관여한 공무원들을 처벌하지 못했기에 유우성 씨 사례와 같은 간첩조작이 만들어진 토양은 건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간첩을 조작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그 구조는 다름 아닌 ‘비밀경찰’ 국정원의 존재이다. 국정원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또다시 간첩조작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사투를 벌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박근혜 정권 들어,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 통합진보당 내란음모조작 사건, 세월호 국정원 실소유 사건 등 국정원으로 불거진 이슈들은 늘상 한국사회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그러나 어느 사건도 국정원이 어떤 짓을 자행했는지 명명백백 밝혀지지 않았고, 그에 따라 어떤 공적인 책임을 국정원에 지우지도 못했다. 그것은 왜일까? 국정원이 비밀경찰이기 때문이다. 국가안보를 다룬다는 비밀주의 특성상 그 활동방식이 공개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국정원에 관해 아는 것이 너무 없다. 그나마 자신의 양심에 따라 국정원의 회유와 협박에 굴하지 않고 싸워온 유우성 씨와 진실을 밝히기 위해 헌신한 변호인단이 있었기에 ‘서울시간첩조작사건’의 실체를 우리는 알 수 있었고 조작에 관여한 책임자들을 사법부가 처벌할 수 있었다. 

국정원의 권력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국정원이 단순 정보기관이 아닌 권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공안정보 수집권한뿐 아니라 공안범죄 수사권한을 함께 갖고 있다는 점이다. 정보기관은 잠재적 위험요소에 기준하여 비밀리에 정보 수집활동을 벌여 왔다. 반면 범죄수사는 엄격한 적법절차가 준수되어야 한다. 정보 수집 활동과 수사 집행 활동이 각기 다른 원칙에 따라 운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 두 가지 활동에 대한 권한을 동시에 갖고 있는 비밀경찰이 왜 인권에 대한 위협인지 알 수 있다. 1) 


유우성 씨 사건의 경우, 국정원은 수사권을 이용하여 ‘거짓자백과 증거조작’을 만들어냈다. 국정원은 유우성 씨 동생 유가려 씨를 국정원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6개월 동안 외부와 단절시킨 채 감금시켜 오빠가 간첩행위를 했다는 거짓자백을 받아냈다.(1심 재판에서 유가려 씨는 국정원에게 회유와 협박을 받아 거짓자백을 했다고 진술했다). 항소심의 유일한 증거는 중국에 있던 국정원 협조자들을 동원하여 유우성 씨의 북·중 출입경기록을 조작한 자료 뿐 이었다. 또한 국정원은 국정원 소속 영사를 동원하여 가짜 영사 확인서까지 만들었다. 


수사권 폐지뿐 아니라 정보수집도 제한해야

국정원에게 부여된 수사권뿐만 아니라 정보수집권도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 한국사회는 여전히 비밀경찰 국정원에게 여전히 모호하고 그래서 광범위하게 정보에 관한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이 사건에서 국정원이 정보수집이라는 미명으로 이뤄졌던 행위들-탈북자들을 통한 정보관리, 국정원 협력자 관리-등이 국가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비밀리에’ 해야 할 일이였는지 심각한 의문이 든다. 정보및보안업무기획·조정규정(대통령령 제21214호)에 따르면 ‘"국내보안정보"라 함은 간첩 기타 반국가활동세력과 그 추종분자의 국가에 대한 위해 행위로부터 국가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하여 취급되는 정보를 말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렇듯 모호하기 짝이 없는 표현은 국정원에게 더 많이 더 넓고 깊게 정보수집 업무를 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유우성 씨의 사례에서 보듯이 탈북자들을 통한 국정원의 정보수집 행위가 간첩을 조작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는 모른다. 국정원이 어떤 정보를 어떻게 수집하는지? 수집된 정보들이 어떻게 집적되고 유통되고 관리되는지? 그래서 그 정보들이 모여 어떻게 간첩을 만들고 있는지? 유우성 씨 간첩 조작사례는 국정원이 과거에 아니 현재도 하고 있을 모를 간첩조작사건 중에서 ‘빙산의 일각’을 보여주었을 뿐이다. 

비밀경찰 ‘국정원의 존재’ 자체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이 필요하다. 비밀경찰의 정치는 군부독재시절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독일 게슈타포, 미국 중앙정보국(CIA), 소련국가보안위원회(KGB) 등 인류역사에서 보듯이 비밀경찰은 그 사회에 엄청난 인권 침해를 구조적으로 양산했다. 국정원이라는 비밀정보기관이 무소불휘의 권력을 갖고 있는 한 한국사회에서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구조를 마련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1) 장여경, [벼리] 국정원의 인터넷 활동과 인권, <인권오름> 365호 2013년 10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