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은 병원에서 재활치료사로 일하는 미주님을 만났습니다. 사랑방과는 2017년부터 20 20년까지 이어진 <노란리본인권모임>에 함께 해온 인연이 있어요. 작년 입사 10년 차를 맞으며 자신에게 주는 선물로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공부하고 있다고 해요. 재활치료 일과 노조 활동, 공부까지 바쁜 나날을 보내는 와중, 마침 이번 학기를 마치고 한숨 딱 돌리는 타이밍이었습니다. 후원인 인터뷰를 할 때마다 ‘운명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하는데요, 경탄하게 됐던 미주 님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 2021년 2월,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김진숙 님의 복직을 위한 희망뚜벅이에 함께 했던 미주 님의 뒷모습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재활치료사로 일한 지 11년 차 된 미주입니다. ‘노동’이 좋아서 해온 여러 활동 속에서 ‘페미니즘’을 고민하게 되면서 작년부터 여성학 공부를 하고 있어요.
2016년 9월 후원 신청을 하고 바로 이어 자원활동 신청도 해주셨어요. 사랑방을 어떻게 알고 함께 하게 된 건가요?
2015년 비정규직으로 입사했는데 2016년 정규직으로 발령이 났거든요. 월급을 가치 있는데 쓰고 싶었어요. 당시 재활치료사로 일하는 분들과 함께 인권 스터디 모임을 했었는데, 하종강 씨 강의를 듣다가 월수입 10분의 1은 인권운동, 사회운동에 후원한다고 했던 게 인상적이었거든요. 그래서 검색하다가 사랑방을 알게 됐어요. 홈페이지를 보는데 안산지역에서 공단 노동자들을 만나는 활동을 하고 있더라고요. 제가 살았던 안양이랑 가깝기도 해서 자원활동을 신청했는데, <노란리본인권모임>을 시작할 거라고 소개해줘서 함께 하게 됐어요.

▲ 2018년 쌍용자동차 투쟁을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찍은 <노란리본인권모임> 단체 사진
모임 하는 날, 안양에서 영등포로 왔다가 다시 안양으로 간 거잖아요. 일 마치고 피곤할 텐데도 그런 내색이 없었어요. 어떻게 그런 에너지를 낼 수 있었는지 궁금했어요.
난 왜 모든 뉴스를 보면 되게 슬퍼하는 사람일까 궁금했어요. 그냥 넘어가는 사람들도 많은데, 계속 눈길이 머무는 내가 이상한 건지 너무 감성적인 걸까 싶었거든요. 세월호 참사도 별일 아닌 것처럼 여기거나 관심 없거나 오히려 날 선 반응을 하는 것을 주로 접하게 됐었는데, <노란리본인권모임>에서 사람들과 같이 고민 나누고 이야기하면서 내가 틀린 사람이 아니라는 확인을 했던 것 같아요. 또 그 시기에 만약 사랑방이 없었다면 출근을 못 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활동하면서 만난 분들을 통해 일하면서 버티다 안되면 떠나는 직장이 당연하지 않고, 바뀔 수 있고 바꿀 수 있다는, 그런 가능성을 그리게 됐던 것 같아요. 그래서 노조 만드는 과정도 열심히 함께 하게 됐고요.
“지속가능한 인권운동을 하고 싶습니다.” 자원 활동 신청하며 남긴 말이었어요. 지속가능 그리고 인권운동이 미주 님에게 어떤 화두였을지가 새삼 다시 궁금해졌어요.
제가 그 당시 꽤 멋진 말을 했었군요. (웃음) 밀물, 썰물처럼 입사하고 얼마 되지 않아 퇴사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어요. 나는 이 노동이 너무 재밌고 좋은데, 병원에서도 내가 오래 일하는 것을 원치 않는 것 같고, 다들 그냥 빨리 떠나는 것을 선택하더라고요. 왜 내 노동이 일시적이지? 난 오래오래 일하고 싶다! 젊었을 때 잠깐 쓰이다가 버리는 어떤 존재가 아니라 여기서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인권 활동도 지속 가능하게 내가 지치지 않고 계속할 수 있는 활동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미주 님에게 재활치료 일은 어떤 의미인가요? 재활치료사를 하게 된 이유도 궁금해요.
제가 만나는 분들 대부분 중증도가 높아요. 응급실이 있는 병원이라 어제까지 일상을 살았는데 갑자기 쓰러져서 오는 곳이거든요. 100% 좋아질 수 없는 상황이지만, 재활치료라는 게 숫자로 표현될 수 없는 미묘한 순간들을 마주하게 되는 건데 그게 뿌듯한 것 같아요.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른데, 함께 하면서 어떻게 다른지를 볼 수 있는 시간인 거예요. 어제는 괜찮았지만 다음날은 섬망이 심해 못 알아보기도 하시거든요. 수직상승이 아니라 좋아졌다 안좋아졌다 다시 좋아졌다 그렇게 천천히 그래프를 그려가는 과정이죠. 그래서 가족 분들께도 일희일비하지 말자고 말씀드리거든요. 모래성을 쌓으면 금방 사라지기도 하지만 또 쌓을 수 있잖아요. 재활치료는 쌓았다가 무너졌다가 다시 쌓았다가 이걸 하루하루 반복하는 것이기도 한데요, 그래서 재활치료사는 옆에서 모래성을 같이 쌓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어렸을 때 막연하게 간호사가 되고 싶었는데, 어떤 글에서 재활치료사라는 직업이 환자의 마지막 손을 잡아주는 직업이라는 것을 보게 됐거든요. ‘마지막 손을 잡는 일’이 어떤 걸지 너무 궁금해서 무작정 진학을 했어요. 공부하면서는 잘 몰랐던 것 같고, 취업하며 내가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인지 더 고민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시작한 일이 어느덧 11년 차가 됐네요. 그 사이에 노동조합을 만들어 활동하고, 여성학 공부도 하게 된 건데 어떤 고민에서였나요?
노조 막 시작했을 때 떠올리면 “병원을 바꿔야 해”라는 에너지만 있으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연차가 쌓이면서 ‘화’만 있으면 바꿀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노조를 함께 하는 사람들은 정말 다양해서 관계나 소통에 어려움을 겪기도 하는데요. 어쨌든 노조를 선택한 사람들은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는데도 해보겠다는 마음, 같이 문제에 부딪히고 바꿔보자는 의지를 낸 거잖아요. 그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도록 노조에서 하는 고민과 기획을 어떻게 쉽게 가닿게 할 수 있을지 생각하게 돼요.
그리고 노조 운동하면서 매일 피켓팅도 하고 열심히 투쟁하면서 너무 행복하고 좋았는데요, 채워지지 않는 구멍이 있었던 것 같아요. 당장 누군가 죽거나 다치는 상황에서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를 하기 어려운 게 있었어요. 병원은 간호사가 많기 때문에 여성 비율이 훨씬 높은 곳이지만, 근속 연수를 보면 간호사들은 계속 나가요. 그렇다 보니 노조 안에서도 대의원 중 남성의 경우 연차나 연령이 더 높거든요. 경험의 차이가 있다 보니 발언력 같은 게 다르기도 하고요. 여성들이 결혼이나 임신을 기점으로 많이 그만두게 되는데, 30대면 나의 숙련도를 끌어올리는 시기잖아요. 결혼과 임신 때문에 그만두는 병원이 아니었으면, 동료들에게 삶의 이벤트가 생겼을 때 함께 축하해줄 수 있고 미래를 함께 고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어요. 나를 채우는 기회로 대학원 들어가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을 예전부터 했었는데, 그런 고민을 해 왔어서 그런지 제 전공이 아닌 여성학을 선택하게 됐어요.

◀ 인권과 노동으로 가득한 미주 님의 책장. 얼마 전 이사하며 좋은 책을 전파하는 마음으로 기부하셨다고.
최근 미주 님의 화두는 무엇인가요?
내 마음의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중심이 잡혀 있지 않으면 흔들릴 때 주변에 생채기를 내게 되는 것 같거든요. 나의 불안이나 불만을 다른 사람에게 투영하게 되는 경우들이 있는데, 저뿐만 아니라 다들 즐겁게 일하면 좋겠거든요. 연차가 쌓이면서 누군가는 저에게 ‘이런 게 문제’라고 말하기 어려운 위치에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내가 중심을 단단하게 잡아야 한다는 생각을 연차가 쌓이면서 스스로 더 하게 되는 거 같아요. 대학원에 가게 된 것도 내 마음의 샘이 마르고 있는 것 같다는 고민 속에서 채우고 싶어서였거든요. 내 안의 기둥이 단단하지 않은 상태에서 계속 달려 나가는 방식으로는 건강하게 오래오래 지속할 수 없으니까요.
요즘 사랑방의 화두는 ‘재생산’이거든요. 어떻게 지속가능한 조직과 운동을 만들어갈지 고민이 큰데, 그럴 때 열심히 활동하지만 사랑방이 보이지 않는다는 고민이 있어요.
내 언어가 있어야지 단단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사랑방은 제가 단단해질 수 있는 언어를 함께 만들어주는 곳이에요. 여러 단체를 후원으로 응원하지만, 이상하게 사랑방은 한 번도 후원 중단을 고민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사랑방을 오간지 되게 오래됐는데, 집회에서 사랑방 깃발, 사람들 보면 그냥 반가운 게 있거든요. 지도교수님이 단어 하나에도 종일 머리를 싸매고 고민한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그렇게 시간과 자리를 지키는 이들이 있어서 다른 사람들이 더 자신 있게 달려 나갈 수 있는 것 같거든요. 무슨 일이 있을 때 그곳에 달려가야 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행동이 무엇인지 왜 옳은지 어떻게 함께 해야 할지 말해주는 것도 해야 하잖아요. 다른 시공간에 있어도 함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든든해지는 말이네요. 끝으로 사랑방 활동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사랑방은 어떤 의제든 피하지 않고 입장을 세우고 운동을 조직하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치열한 사랑방을 앞으로도 기대하며 ‘지속 가능’을 함께 응원합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만큼 사랑방 활동가들도 건강 챙기면서 활동하시고, 늘 행복하시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