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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인 인터뷰

손 닿는 곳에서 돌봄의 매트릭스를 만들고 싶은

어라 님을 만났어요

한 해의 마무리를 알리는 12월은 아무래도 ‘자신’과 ‘곁’을 동시에 떠올려보는 시기인 듯 싶습니다. 나 자신을, 내 주변의 사람들을, 내가 발 딛고 있는 곳을 잘 돌보며 살고 있을까? 질문을 던져보기도 하고요. 고단한 일상이나 막막한 미래를 걱정하면서 불안에 빠지기도,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도 갖게 됩니다. 모두가 돌봄의 위기와 관계의 불안을 겪는 시대, ‘나이 들고 싶은 동네’를 내 손 닿는 곳에서 만들어가고 있는 후원인 어라 님을 만났습니다. 혼자서는 할 수 없지만 함께라면 가능한 일, 같이 만나볼까요?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하 살림)에서 일하고 있구요. 여성주의자이면서, 공동체를 지향하면서, 사회적기업가인 어라(유여원)입니다.

 

‘살림’이 어떤 곳인지 잘 모르는 후원인들을 위해서 살림도 소개해주세요.

살림은 ‘여성주의 건강관’을 지향하면서 서로 돌보고 함께 건강해지는 마을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협동조합입니다. ‘여성주의 건강관’이라고 하면 다들 좀 생소하게 느끼실 것도 같은데, 살림은 ‘평등․평화․협동’이라는 지향으로 설명하기도 해요. 구체적으로 하는 사업은 너무 많은데… 의원과 치과, 재택의료센터, 한의원 같은 의료기관을 운영하고 있구요. 데이케어센터 운영과 방문요양 같은 돌봄 사업도 하고, 지역의 고령층 분들이 다른 고령층이나 장애인분들의 집에 찾아가서 운동도 가르쳐드리고 관계를 맺는 ‘건강 이웃’ 노인일자리사업을 하기도 하구요. 또 조합원들이 해나가고 있는 굉장히 많은 돌봄 협동사업과 자원활동, 건강모임들이 있어요.

 


최근에 살림을 함께 창립한 추혜인 님과 <나이 들고 싶은 동네>이라는 책을 내셨죠.

네, 10월에 나왔는데 1쇄가 다 팔렸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살림이 2022년에 10주년을 맞이했을 때, 백서를 낼지 연혁을 정리할지 고민하다가 조합원들과 이야기를 나눴거든요. 그런데 조합원들이 협동조합은 정말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이어진 곳이니까, 조합원들의 이야기를 잔뜩 꺼내고 모으자고 해서 그렇게 결정을 했어요. 그래서 ‘조합원 이야기마당’을 66회(!)를 진행했거든요. 그러고 나니 그때 나왔던 재미있는 이야기, 눈물 나는 이야기들을 묶어서 대중서를 내면 좋겠다고 한 거죠. 우리한테는 현실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또 새롭고 신선한 이야기일수도 있고, ‘우리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 수도 있으니까요.

▲ 유여원, 추혜인 저 <나이 들고 싶은 동네>

 

책은 내가, 우리가 원하는 ‘나이 들고 싶은 동네’을 실제로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읽은 사람들의 반응은 어때요? ‘돌봄’에 관심이 많은 분들일 것 같아요.

2030대로 보이는 여성 페미니스트 한 분이 ‘이 책을 왜 읽어보고 싶은지’를 써서 보내주시는 분들에게 책 10권을 자비로 사서 보내주는 이벤트를 하고 있는 걸 알게 됐는데, 너무 감동이었어요. “나에게 삶의 새로운 선택지를 유쾌하면서 견고하게 알려준 이야기”라고 하면서, 다들 꼭 읽어봤으면 한다고요. 다른 인상 깊은 이야기도 많은데, 상대적으로 젊은 20~30대 분들이 돌봄에 대해서 관심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책을 읽고 굉장히 강렬하게 반응하시는 게 저한테는 인상 깊었어요.

 

왜 20~30대가 돌봄에 대한 이야기에 강렬한 반응을 보인다고 생각하세요?

불안한 사회잖아요. 조금 덜 불안하게 살고 싶지만, 사회에서 제시하는 생애주기나 삶의 경로대로 살아가기는 싫고. 그런데 어떤 대안이 가능할까 생각하면 막연하기도 하구요. 그런데 책을 통해서 여러 대안 중에서 살림이라는 한 가지 사례를 보는 거니까요. 손 닿는 곳에 있는.

 

돌봄과 삶의 위기라는 공통적인 조건이 있어서 특정 세대만의 관심은 아닐 것 같아요. 코로나 이후에 ‘돌봄사회로의 전환’이나 삶에 필수적인 활동으로서 돌봄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기 시작했죠. 살림은 돌봄을 구체적인 사업으로 하기도 하고 조합원들이 서로를 돌볼 수 있는 관계망을 만드는 조직 활동도 하고 있는데, 현장에서 더 갖게 되는 고민은 무엇인지 궁금해요.

사회에는 돌봄이 굉장히 크게 존재하는데, 반대로 많이 노출되어 있지 않은 것 같아요. 돌봄이 일종의 서비스이기도 하고, 노동이기도 하고, 관계이기도 하고 엄청 복잡한 문제거든요. 복잡한 문제여서 나쁜 건 아니잖아요. 복잡한 문제는 복잡하게 다뤄지면 되거든요. 그런데 돌봄이 복잡한 만큼 이 문제를 복잡하게 다루어본 경험이 별로 없어서, 계속 막막한 상태에서 새로운 길을 뚫고 나가야 되는 어려움이 있어요. 의료보다 더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의료는 그래도 ‘표준’이라는 게 있잖아요. ‘질 좋은 의료’처럼 ‘질 좋은 돌봄’에 대한 정의나 기준이 없는 건 아닌데, 돌봄 문제의 복잡성에 비해서 격차가 큰 것 같아요.

실제로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 구체적으로 필요로 하는 게 뭔지 돌보는 사람과 공동체가 같이 이해하려면 그동안 언어로도 정리가 잘 되어있어야 하고, 그걸 구현해본 경험도 많이 쌓여있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개선도 많이 되고, 패러다임도 여러 번 바뀌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다뤄지지 못한 영역이라서 잘 하기가 어려워요. 인권운동도 역사가 길잖아요. 협동조합도 몇백 년을 이어져 오면서 계속 다음어진 게 있거든요. 돌봄이 굉장히 큰 철학과 현실에 대한 분석이 필요한데, 그게 많이 갖춰진 상태에서 하고 있는 느낌은 아닌 것 같아요. 그래도 여성주의에서 돌봄을 이야기해 온 토대가 있고요. 최근에는 돌봄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사회적 논의가 집중되면서 읽을 책이 많아서 너무 좋아요. 누가 막 고민하고 연구해서 결과물을 내주니까 너무 좋아요.

 

돌봄 관련 활동을 하면 할수록 더 많이 고민하면 할수록 ‘아, 이런 게 필요하다!’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요?

제 개인의 생각이라기보다 살림에서 조합원들과 함께 정리한 건데, 저희는 ‘사람들을 돌봄 매트릭스에 태워야 된다’ 이렇게 생각해요. 돌봄이 아직까지 ‘필요’의 영역이 많이 남아 있고 미래의 가능성이 열려 있는 영역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돌봄에 대한 접속점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지금 집중해서 해나가려고 하는 건 사람들이 돌봄에 대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다변화하는 거예요. 1년에 한두 번 돌봄 자원활동을 할 수 있는 사람부터 정기적으로 돌봄 활동하고 싶은 사람, 돌봄을 직업으로 해볼까 고민하는 사람부터 아주 간단한 돌봄 교육을 듣는 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까지, 접촉면을 완전히 다양하게 늘리고 그래서 인생의 어느 시점이든 돌봄에 꼭 접속해보게 하는 것이 현재 중요한 전략이죠.

 


▲ 살림 조합원들이 운영하는 돌봄공간 ‘서로돌봄카페’에서 참여자들과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 있고 그 필요가 높다면 돌봄 사업소를 더 많이 만들 수도 있을텐데요. 그런데 전체적인 돌봄 매트릭스를 고민하게 된 이유가 궁금해요.

이건 어쩔 수가 없어요. 협동조합 조합원들도 그렇지만 이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 다양하잖아요. 데이케어센터나 병원과 같은 사업소가 필요할 때도 있고 그런 사업소를 어떻게 여성주의적으로 잘 해나갈 수 있을까 계속 고민해나가는 것도 필요한데요, 그와는 다른 욕구를 가진 사람들이 실제로 존재하고 살아가고 조합원으로 있기 때문에 하나의 전략을 갖기가 어려워요.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본인이 필요한 것부터 본인 주변의 사람들이 필요한 것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방향을 찾아가다보면 그물망 같은 전략이 나오게 되거든요. 그런데 욕구만 다양한 게 아니라 그걸 실제로 해나갈 사람들도 다양하기 때문에, 엄청 갈고 닦여진 해결책보다는 좀 엉성하지만 매우 다층적인 해결책이 항상 같이 나오고 동시에 진행되는 특징이 있는 것 같아요.

 

살림이 단순한 ‘기업’이 아니라 협동조합이면서 사회적 경제 조직이기도 해서 갖게 되는 고민과 방법인 것 같아요. 사회적 경제를 뭐라고 이해하면 좋을까요?

사회적 경제에 대한 정의도 다양하고 이에 대한 연구도 많아요. 실제로 소셜벤처,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협동조합 등 형태나 명칭도 매우 다양하고요. 최근에 많이 쓰이는 건 ‘사회연대경제’라는 말인데, 저도 많이 공감하구요. 굳이 이 말을 쓰는 이유 중 하나가 ‘경제 활동을 통해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람과 자연 사이에, 생명과 생명 사이에 연대가 더 증진되는가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거든요. 추상적이긴 하지만 사회적 경제의 특징을 잘 표현하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경제와 연대, 생산자와 소비자가 분리되면 될수록 효율화되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런데 그런 효율화가 아니라 연대성이나 관계성이 높아지는 방식으로 경제 활동을 하고, 그로 인한 ‘소외’를 줄여나가는 거죠. 살림이 속한 사회적 협동조합은 보통 조합원들이 공동으로 필요한 걸 함께 만들어내는 조직이지만, 조합원들의 필요가 충족되면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조합원의 활동 자체가 사회변화와 사회적 약자들의 삶을 함께 통합해나는 걸 중요한 미션으로 삼고 있어요.

 

사회연대 전략을 통해 사회 전반의 공공성을 만들어왔던 여러 운동들이 떠오르기도 하네요. 그런데 정말 ‘경영’과 조직운영이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살림의 전문경영인이기도 한데, 일반 기업과 협동조합 경영자는 뭐가 다르다고 느끼세요?

협동조합 경영자들도 워낙 롤모델이 다양하고 각자의 색깔이 있어요. 아무튼 이상한 사람들인데요. (웃음) 일단은 쉬운 문제를 선호하면 협동조합 경영자와 안 맞다, 문제를 쉽게 풀고 싶은 사람은 어려운 것 같아요. 협동조합은 사회적 가치와 재무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잖아요. 문제가 좀 복잡한데 그런 복잡함에 짜릿함을 느끼는 게 좀 필요한 것 같아요. (이 문제를 진짜 좀 풀어보고 싶다는 도전감인가요?) 네, 나 혼자서는 못하지만 같이 하면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마음이 좀 있는 것 같구요.

그리고 연대에 대한 감각이 좀 다른 것 같아요. 남이 나한테 그냥 뭘 주는 경우는 없잖아요. 내가 생각하기에 옳은 일을 한다는 건 그냥 내 생각이 옳은 거고, 그렇다고 해서 누가 뭘 그냥 막 저한테 해주기를 기대하면 곤란하잖아요. 그럴 때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뭘 줄 수 있지, 우리 조직은 이 사회에 무엇을 줄 수 있지, 이런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연대하려면 뭘 막 주려는 사람들이 모였을 때 연대가 잘 되더라구요. 협동조합을 시작할 때도 그랬고 계속 유지될 때도 그렇고, 사람들이 뭘 엄청 주려고 해요. 보통 사람들이 뭘 그냥 받으려고만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아니에요.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걸 계속 누군가에게 줘야 할 때 열정적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보통은 본인이 뭘 가지고 있는지 잊고 살거든요. 사람들이 다 겸손해요. 그래서 사실은 개개인에게 이런 특성과 역량이 있다는 걸 서로 잘 알아봐주고, 그걸 다른 사람들이나 조직을 위해서 내놓을 때 다 같이 박수를 쳐주고, 그 활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같이 또 돌아보고 하는 거죠. 생각해보니 어떤 조직이든 조직이 돌아가려면 이렇게 하는 것 같네요.

 


▲ 살림 총회에서 경영계획을 발표하며


조직은 계속 변하는 거긴 하지만, ‘살림은 이런 곳이지’ 할 때, 살림을 어떻게 떠올렸으면 좋겠다는 바람 같은 게 있나요?

조직이 내 문제를 다 해결해줄 수는 없겠지만, 일단 얘기는 해볼 수 있는 조직. 뭔가가 너무 필요하거나 뭔가가 없어서 괴롭고 힘든데, 그럴 때 와서 말하면 들을 사람이 있는 곳이요. 어떻게 해볼지는 그 다음 문제고, 거기서부터가 시작인거니까요. 제가 다 들어드린다는 건 아니에요. (웃음) 하지만 들어줄 사람이 있는 곳이었으면, 그래서 누구나 와서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이면 좋겠어요.

 

‘유쾌하고 견고한 선택지’를 만들어가는 게 만만한 일은 아닐 것 같은데, 그걸 계속하게 하는 힘은 뭔가요?

책에도 썼는데, 제가 기본적으로 ‘감탄, 감동, 감사’가 엄청 크고 이에 대한 역치가 낮아요.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을 때 그만둔 적도 있는데요, 딱 그만두고 싶은 시점에 항상 감탄하고 감동할 일이 막 생겨요. 그러면 다시 감사하는 마음이 돼요. 그리고 활동가들을 보면 너무 감동적인데, 또 가만히 보면 전업활동가가 아닌 사람들도 다들 뭔가 조금씩 활동을 하고 있어요. 그게 또 엄청 감동적이구요.

인생에서 다 물러나기만 하는 사람은 없고, 어느 시점에 자기가 약간 손해볼 것 같아도 치고 나가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런 걸 보면 내가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에 감동과 자부심을 느껴요.

 

진짜 힘든 거, 지긋지긋한 거 하나만 이야기해줄 수 있나요?! (ㅎㅎㅎ)

그게 문제예요. 지금 딱 떠오르는 게 없어요. 기억력이 짧아요. 음… 그냥 떠오르는 걸 이야기해보자면. 내가 가지고 있는 걸 다른 사람이 못 가지고 있으면 그게 너무 화가 나요. 모두가 똑같이 살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내가 받을 수 있었던 교육, 내가 가질 수 있었던 건강, 나한테 주어졌던 기회 이런 게 자연스럽게 주어져 있지 않은 사람들을 보면 뭔가 크게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게 저를 추동하는 거기도 한데, ‘뭔가 잘못됐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제가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가지고 있다는 게 아니라… 최소한 내가 가진 만큼은 남들도 가질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원통하다, 이렇게는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 살림 산행소모임 ‘오투’ 등산에서

 


제가 사랑방에서 상임활동가로 활동해보려고 한다고 말하자마자 바로 사랑방 후원을 시작하셨죠. 후원해달라는 권유를 하기도 전이었는데, 늦었지만 우선 감사하고요. 그래도 사랑방을 안 지는 오래 되셨죠?

몽 님이 사랑방 활동에 그렇게 시간을 많이 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면, 그건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뭘 대단한 걸 하는 건 아니잖아요.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니, 나도 관심 한 번 가져볼까’ 이런 시작점이 됐던 것 같구요.

사랑방 하면 떠오르는 건, 언젠가 사랑방이 열었던 후원의밤 카피가 ‘은행 털고 싶은 날’이었는데 그 카피가 너무 기억에 남아요. (찾아보니 사랑방이 2006년 11월 10일 <월세탈출을 위한 후원의 밤 ‘은행 털고 싶은 날’>을 열었었네요~) 2006년에 사랑방 활동비가 35만원이었다는데, 그때 제가 여성단체인 ‘언니네트워크’에서 상근활동 하면서 받은 활동비가 150만원이었어요. 그때도 ‘이건 뭔가 잘못됐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사랑방이랑 별다른 인연이 없었는데, 잘 기억은 안나지만 누군가 저에게 이만큼 팔아달라고 티켓을 줬는데 ‘더 줘’ 이러면서 후원주점 티켓을 미친 듯이 팔았던 기억이 나요. 물론 35만원이라는 활동비를 설정한 많은 이유와 조건이 있었겠지만, 사랑방인데 내가 받는 만큼은 받아야지, 이런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그동안 크고 작은 모금캠페인을 여러 번 해왔고 제 정체성 중 하나가 모금기획자이기도 한데요. 그때 제가 티켓을 굉장히 잘 팔면서 ‘나 모금에 재능이 있나?’ 그런 생각을 했던 것도 기억이 나네요. (웃음)

 

사랑방 후원인이 된 이후에 소식지도 꼬박꼬박 챙겨 읽으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사랑방 활동에서 중요하게 눈에 들어오는 게 있나요?

제가 잘 아는 분야가 아니라서 말하기가 좀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제가 예전에 활동했던 언니네트워크는 영페미니즘에 기반해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면서 갔던 단체이다 보니, ‘큰 우산이 되는 조직’을 별로 느껴본 적이 없어요. 제가 이해하는 방식이긴 하지만, 사랑방은 좀 ‘단체들의 단체’ 같은 느낌이 있거든요. 그런 역할이 존재한다는 걸 사랑방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된 것 같고, 그런 활동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역에서도 그런 역할을 하는 단체가 있거든요. 은평의 경우에는 ‘은평지역사회네트워크(은지네)’라는 네트워크가 있지만, 은지네를 실제로 돌리는 굉장히 많은 일을 하고 동네에서 큰 유시가 터졌을 때 일종의 사무국 역할을 하는 단체가 있어요. 이슈에 따라서 살림이 그런 역할을 맡기도 하지만, 그게 자기 단체의 사명이기도 한 곳이 있는 거죠. 엮어주는 역할을 하는 단체가 있어야 각개 운동이 격파해서 넓어지면서도 운동사회 지평 자체가 한 방향으로 같이 가면서 서로 배울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역할을 하는 단체의 존재가 너무 소중하죠.

 

어라 님은 제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탁월한 조직활동가이기도 해요. 사회운동에 대한 애정과 신뢰가 큰데, 사회운동이 어떤 방향의 조직 활동을 해나가면 좋겠다는 하는 기대가 있다면?

사회 의제를 확 끌고 나가는 급진적인 운동의 소중함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그런 이야기들이 사람들의 귀에 들어오기까지 귀를 열어주는, 면대면 활동에 강한 협동조합이나 사회경제운동과 사회개혁 운동이 같이 연결된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보게 돼요. 물론 사람들이 단선적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요. 협동조합 운동을 많이 경험한 사람들이 내 필요를 같이 충족시키는 공동체성을 넘어서서 다른 단계, 사회성과 연대성으로 나아가는데도 좋은 경험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구요. 그런 일을 같이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후정의운동을 통해서 여러 사회운동 단위들과 노동조합, 구체적인 지역의 에너지협동조합들이 연결되는 흐름도 있다고 들었는데, 그런 사례도 떠오르네요.

맞아요. 기후정의와 돌봄 두 가지는 기존의 사회운동, 현장에서 대안을 찾아내고 구현하는 다른 운동들이 맞닿을 수 있는 주제이고, 또 삶에서도 중요한 주제니까요. 그런 연대의 흐름들이 더 많이 생겨나야 하는 것 같아요.

 

인터뷰를 책 이야기로 시작했으니 책 이야기로 마무리해볼까요? 다독가이면서 속독가인데, <나이 들고 싶은 동네> 말고 사랑방 후원인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저는 책을 빨리 읽어야 돼요. 많이 읽고 싶어서. 저와 같이 살림을 만든, 살림의원 주치의면서 동네 주치의이기도 한 추혜인 원장 님이 쓰신 <왕진 가방 속의 페미니즘>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랑방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제가 사랑방처럼 훌륭한 단체를 이전에는 잘 몰랐던 부분에 대해서 사죄드리고요. (웃음) 사랑방 활동가분들과 후원인분들 모두 연말 잘 보내세요. 우리 건강하게 서로를 돌보면서 끝까지 버팁시다. 그리고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