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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세상을 위하여

10월 18일, 보신각 일대는 살아있는 외침들로 가득 찼다. 이날 오후 1시 30분부터 10월 17일 빈곤철폐의 날을 맞이하여 ‘빈곤철폐 퍼레이드’가, 오후 4시부터는 2년간 이어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집단 학살을 규탄하는 ‘우리 모두가 팔레스타인이다’ 집회가 연달아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나도 사람이야! 이제 그만 쫓겨나고 싶다!

모두가 아프지 않을 권리, 모두가 안전하게 노동할 권리, 모두가 안정적인 주거와 생활을 보장받을 권리, 모두가 평등하게 살 권리. 너무도 당연하게 들리는 이 권리를 위해 온몸으로 싸우는 이들이 모였다. 홈리스, 빈민, 노점상, 철거민, 장애인, 이주민, 노동자, 돈이 되지 않는 사람들…. 무대 위에서는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권력에 맞서는 분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철거 용역의 폭력과 그걸 묵인하고 동조하는 경찰-국가의 현실을 생생히 전달하며 선대책 후퇴거, 노점상 보호법 등을 요구하였다. 또, 아플 때 제때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의료공공성 강화를 이야기하기도 하였다. 연결되는 목소리를 차례차례 들으며 마땅히 안전하게 삶을 살아갈 권리를 보장해주어야 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인데도 불구하고 권리는커녕, 국가의 이름으로 일방적인 폭력을 자행하고 있다는 현실에 화가 났다. 또, 이러한 삶의 목소리는 왜 일상에서 쉽게 들을 수 없었을까 생각이 많아지기도 했다.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길바닥으로 밀어내고 시선에서 지워버리려는, 한참 기울어진 세상의 이야기 속에서 사람을 배제시키는 기준은 대체 어떤 권리로 정하고 있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빈곤철폐연대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서 활동하시는 권달주 님의 "우리가 요구하는 건 시혜와 동정이 아니라 권리다"라는 말이 다시금 와닿았다. 폭력의 원인을 개인의 잘못으로 떠넘기려 하는 실태 앞에 가난과 장애는 잘못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우리를 빈민으로 만드는 사회 구조를 향한 비판을 지속해야 한다는 마음을 다지는 시간이었다. 자본이 만들어낸 혐오와 멸시의 선 안에 약자를 가두고 분리시키는 사회를 넘어서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고 평등한 권리 주체로 함께 사는 공동체를 향해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를 위해서 국가가 해야 할 일은 지금의 폭력적인 빈민 철폐가 아니라 정의로운 빈곤 철폐고, 죄 없는 사람들에게 죄인 낙인을 찍어 내쫓는 게 아니라 공공성으로 불평등 세상을 뒤집어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일일 테다.

한때 집이라 불렀던 폐허로 돌아갈 것이다

 권리의 요구를 안고 종로 일대를 행진하고 오니, 또 다른 죽음과 부정의에 저항하러 빨간색 옷을 입은 이들이 있었다. 드문드문 팔레스타인의 전통 스카프인 쿠피예를 두른 분들도 보였다. 휴전 발효 이후에도 온갖 명분을 들어 학살을 멈추지 않고 있는 이스라엘의 만행을 규탄하고, 팔레스타인의 해방에 연대하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가자지구의 상황과 함께 이스라엘의 거짓말투성이 명분을 하나하나 비판하는 팔레스타인평화연대 뎡야핑 님의 브리핑을 시작으로, 평화·노동·기후·인권·학술 등 여러 분야의 활동가들이 마이크를 잡았다. 조금씩 다른 말들이었지만, 공통적으로 우리의 연결됨을 강조하고 있었다. 팔레스타인의 자결권을 보장하는 완전한 종전, 이스라엘이 지금까지 저지르고 있는 범죄를 책임지는 완전한 해방을 위해 우리는 끝까지 침묵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 긴급행동 순천의 활동가 아진님의 발언 중 친구가 “전쟁? 그거 아직도 안 끝났어?”라고 말했다던 부분에서 고개를 들 수 없었을 만큼 나 역시 최근까지 팔레스타인의 정세에 무지했었고, 그래서 지금이라도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결국 답은 연대에 있었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끊임없이 침묵시키려는 사회와 자본 앞에서 목격한 것을 함께 외치는 일만이 이스라엘을 넘어 전 세계가 가담한 이 전쟁범죄를 종식시키고 정의로운 해방으로 이끌 수 있는 힘이 아닐까. 그들이 폐허가 되어버린 집으로 돌아가 다시 새로운 집을 짓고 삶을 살아갈 때까지 연대하는 것이 ‘연결된 우리’의 책임일 테다.

 행진 중 미국 대사관 건너편에서 다다랐을 때, 걸음을 잠시 멈춰 서서 다 함께 ‘미국도 집단학살 공범이다’, ‘더 이상 숨을 수 없다’는 구호를 외쳤다. 수많은 깃발의 목소리와 그 반대편 경찰의 목소리가 교차하며 진풍경을 그려냈다. 또 대열에서 트럭이 멀어져 소리가 작아지자 주변 곳곳에서 자발적인 구호 선창이 시작되었다.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연대의 구호가 통일되어있진 않아도, 그 자체로 우리의 마음 같다는 생각에 기억에 남는다. 행진을 마친 후, 브라질리언 퍼커션 앙상블 ‘호레이’의 연주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흔들리는 연대의 깃발 사이에서 사랑방의 깃발도 함께 펄럭였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두 번의 행진을 하는 동안, 가장 많이 떠올랐던 말이다. 모든 투쟁은 사람을 생명이 아닌 이윤으로 바라보는 세상에 사람으로 사람답게 살기 위해 맞서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을 그저 동등한 사람으로 대하는 일이 이렇게나 어려운 일일까 슬퍼지지만 오늘, 그 어려운 일을 하고 있는 이들을 보고 만났다. 평등하게 서로를 지지하는 연대의 힘을 믿고 연결되어있는 모든 곳의 나를 위하여,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오늘을 위하여, 어제의 부정의하고 불평등한 세상을 향해 투쟁을 멈추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