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을 들을 때 나는 귀로만 듣지 않고 온 몸으로 듣고자 합니다. 음표들이 춤을 추고 달음질을 하고 온갖 표정을 지을 때 그 분위기를 어찌 귀로 다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그래서 좀 망측한 얘기지만 옷을 홀랑 다 벗고 맨 살로 음악을 듣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가끔은 옷을 입었지만 맨 살의 느낌을 가질 때도 있습니다. 모공 사이로 솜털 위로 소름을 만들며 파고드는 음악의 느낌, 그 쾌감은 이루 다 형언할 수 없습니다.
말로 다 할 수 없음, 그것이 느낌입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으니 글로는 할 수 있겠습니까? 무게로 달고 점수로 잴 수 있겠습니까? 느낌은 온 몸의 것입니다. 온 마음의 것입니다. 느낌은 원초적입니다. 느낌은 질적입니다. 몸과 마음을 열면 그냥 생기는 것이 느낌입니다. 애써 일부러 갖는 느낌은 느낌이 아닙니다. 느낌은 자유, 해방, 평등입니다. 느낌은 무한히 열려 있습니다. 나의 느낌을 훔치거나 빼앗을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니 느낌보다 더 인간적인 것이 어디 있습니까?”
- 조용환, ‘느낌 예찬’
<교육인류학소식>에 실린 이 글을 처음 읽은 건 2006년이었습니다. 누군가 쓴 글을 읽을 때, 내가 가지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고 있던 감각들이 터져 나오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사실 그건 아주 드문 경험인 것 같아요. 말로 표현할 수 없고 글로 표현할 수 없다고 했지만, 저는 저자의 말과 글로 그 ‘느낌’을 곧장 몸으로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구체적인 순간이나 장면이 떠오른 것도 아니지만, 이 글이 말하는 그 느낌을 제가 ‘알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이 아주 오랫동안 제 마음에 남아 있었던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이 구절을 기록해둔 메모를 꺼내어 읽었습니다. 거의 20여 년 만에요. 올해 1월 19일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합의한 42일간의 휴전안이 발효된 이후, 해변 길을 따라 가자지구 북부로 돌아가는 수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행렬을 본 이후였습니다.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긴급행동)’ 참여단체들의 소통방에 올라온 귀환 영상을 보면서 오래전에 읽었던 이 글을, 그 글을 읽을 때의 제 느낌을 떠올리는 건 너무 자연스러웠습니다.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땅에 얹고 흙에 입 맞추는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느낌만큼은 그 누구도 훔치거나 빼앗을 수 없다는 것을, 이렇게나 멀리 떨어져 살아가는 저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자유, 해방, 평등은 낡고 닳은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지만, 자유, 해방, 평등이라는 글자 말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 그 느낌만큼은 저도 알고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때 제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매우 낯설게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띄엄띄엄 하던 이스라엘 대사관 앞 팔레스타인 1인 시위를 한 달에 한 번 시간을 내어 꾸준히 해야겠다 다짐한 것도 이때였습니다. 가자지구 집단학살은 짧은 휴전 기간에도 단 한순간도 멈춘 적이 없고 매일 갱신되고 누적되는 비극의 증거들이 눈앞에 펼쳐지지만, 생각해보니 제 몸을 이끈 건 바로 가자지구 귀환 장면이었던 것 같습니다. 온전한 자유, 해방, 평등 속에서 그 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 말고, 사실 제가 아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오랜 식민통치의 역사도, 팔레스타인의 오랜 독립 해방 운동의 역사도 잘 알지 못합니다. 팔레스타인을 옥죄고 있는 국제 정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생각해보니 정말로 사랑방 동료들과 팔레스타인 책 한 권을 함께 읽은 것이 다네요.) 긴급행동 소통방에 올라오는 기사와 글들을 가끔 읽지만, 뒤돌아서면 ‘나크바’라는 단어가 무슨 뜻이었는지 검색해봐야 할 정도로 잊어버리곤 합니다. 제가 본 귀환 장면을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란다는 마음 말고는 정말 설명할 길이 없네요.


저는 ‘그때그때’를 사는 유형의 인간인데, 올해부터는 한 달에 한 번 1인 시위를 할 일정만큼은 꼬박꼬박 입력하는 성실한(?) 인간이 됐습니다. 일생 운동조차도 꾸준히 해본 적이 없는데 말예요. 사실 긴급행동은 격주마다 이스라엘 대사관 인근에서 집회를 열고 있고, 토론회나 대화모임 뿐만 아니라 서명과 모금 운동에 이르기까지 셀 수 없는 활동들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제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전념해야 하는 운동이 있고, 참여를 하기 어려운 중요한 자리가 있을 땐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어요. 그럴 때 의외로 그때그때 계획할 수 있는 참여가 1인 시위였습니다. 뭔가를 꾸준히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저 자신에게 위로가 됐습니다. 절망이 이 기나긴 전쟁의 결말일 수는 없다는 마음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팔레스타인을 떠올리는 누구든 각자의 마음을 지킬 수 있는 무언가에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뒤돌아서도 쉽게 잊지 않게 됐습니다.
저는 ‘단체 티셔츠’는 서랍 속에 고이 모셔두는 인간이었는데, 팔레스타인 티셔츠만큼은 즐겨 입는 평범한(?) 운동권 인간이 됐습니다. 페미니스트 티셔츠, 무지개 티셔츠조차 여전히 서랍 속에 빼곡히 쌓여 있는데 말예요. 언젠가 사랑방 동료인 민선이 까만색 반팔 티셔츠를 하나 건넸습니다. 팔레스타인 행사에 다녀왔는데 3만원에 판매할 예정인 티셔츠를 유일하게 당일 행사에서만 1만원에 팔고 있었다며, 다음 달에 1인 시위를 하러 갈 때 입으라는 말고 함께 선물해주었습니다. 9월 1인 시위에는 그 티셔츠를 입고 이스라엘 대사관 앞으로 가려고 합니다.
그리고 10월 18일에는 사랑방 동료들과 다 함께 집회에 갑니다. 곧 다가올 10월 7일이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집단학살이 시작된 지 2년이 되는 날입니다. 사랑방도 함께 하고 있는 긴급행동에서 분노와 연대의 마음으로 <10.18 전국 집중행동의 날> 집회를 열 예정입니다. 때로 팔레스타인 소식을 따라가기도 어려운, 하지만 집단학살이 종식되기를 바라는 마음만큼은 여전한, 그저 느낌에 기대어 인간다움을 지킬 길을 찾고 싶은, 저와 같은 많은 분들이 함께 하는 자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팔레스타인에 자유, 해방, 평등을!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집단학살 2년, <10.18 전국 집중행동의 날>
- 일시: 2025년 10월 18일(토) 오후 4시
- 장소: 서울 보신각
- 주최: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시민사회 긴급행동